‘국내 최초 장애인기업’ 정립전자가 대규모 투자 실패와 무리한 직원 해고 등으로 행정제재를 받게 될 전망이다. 2015년에도 회사 대표 등의 수백억원대 횡령 사건이 있었던 정립전자가 반복적인 사건·사고에 시달리면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의 관리감독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정립전자를 운영하는 한국소아마비협회에 대한 일부 이사 해임 건의 등 제재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회는 김정희 이사장을 비롯해 총 11명의 이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정립전자의 경영 실패 등 최근의 논란과 관련해 협회 이사진이 선관주의 의무를 지켰는지, 이에 대해 시가 이사해임 요구를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법률자문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립전자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 하반기 당시 이 회사 대표를 맡고 있던 서모 전 대표(시설장)가 마스크제조업 진출을 추진하면서 불거졌다.

서 전 대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수요가 급증하자 약 20억원에 세 대의 비말차단 마스크 제조설비를 중국에서 들여왔다. 공장 리모델링 비용 등을 합치면 마스크사업 진출에 40여억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 중 두 대는 고장나 마스크를 제대로 생산할 수 없었고, 기존에 찍어낸 마스크도 식품의약품안전처 승인을 받지 못해 불법 생산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중국산 마스크 제조설비를 고가 매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분당 100장을 생산할 수 있는 국산 설비가 대당 2억원 안팎인 데 비해 이 설비는 분당 300장 생산능력을 갖췄다는 이유로 대당 6억4000만원에 수입한 것이다.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무리하게 중국 설비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임원진 등이 페이퍼컴퍼니 등을 통해 뒷돈을 챙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고 말했다.

대규모 투자에도 마스크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정립전자는 장애인을 포함한 수 십명의 직원을 무더기 해고했다. 지금은 장애인근로자 63명과 일반근로자 17명 등 80명이 남아 있다.

이와 관련, 서울 광진구에 있는 정립전자의 관할관청인 서울시와 광진구에 대한 책임론도 제기된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선 서울시에 보조금 중단 등 특단의 대책을 동원해야 한다고 지적했지만, 서울시는 보조금 지급을 유지할 방침이다. 정립전자는 매년 서울시 9억원 등 12억원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시 관계자는 “장애인직업재활시설의 보조금은 종사자 인건비와 수도요금 등 관리운영비로 투입되는 만큼 보조금을 줄이면 직원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해명했다.

정립전자는 소아마비협회 산하단체인 정립회관과 삼성전자가 공동출자해 1989년 설립한 장애인 기업이다. LED(발광다이오드) 조명, 폐쇄회로TV(CCTV), 도로안내표지판 등을 생산해왔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