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지휘…"색다른 공연 그 자체로 즐겨주세요"

현란한 음악 속 신나게 춤을 추는 배우들 사이에서 김문정 음악감독은 어깨를 들썩이며 피아노를 치고, 지휘봉을 휘둘렀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 웅덩이처럼 파인 공간인 오케스트라 피트가 아닌 붉은 원형 무대의 한가운데서다.

주인공의 바로 옆자리, 관객들의 시선이 가장 집중되는 곳에서 김 감독은 그날의 공연을 완성해나갔다.

김문정 음악감독 "피아노 치며 어깨 '들썩' 이것도 다 지휘죠"

최근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음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 감독을 만났다.

160분에 달하는 공연을 이제 막 끝낸 직후였는데도 지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김 감독은 마스크에 인이어까지 귀에 꽂고 공연을 한 탓에 상기된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고는 "아주 엉망이네요"라며 털털하게 웃어 보였다.

2001년 뮤지컬 '둘리'로 지휘봉을 잡은 김 감독은 올해 21년 차에 접어든 배테랑이지만, 이번 공연만큼은 색다르다고 했다.

국내 대극장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이머시브'(Immersive) 공연이라는 특징 때문이다.

이머시브 공연은 한마디로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무대와 오케스트라, 관객과 배우,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고 모두가 공연에 녹아든다.

음악감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무대 한가운데 선 그는 몹시 바쁘다.

지휘는 물론 연주도 해야 하고, 신나는 음악이 나올 때는 춤도 춰야 한다.

때맞춰 불빛이 반짝이는 머리띠도 써야 하고, 무대를 휘감는 붉은 대형 천도 팽팽해지게 들어줘야 한다.

보는 이조차 혼이 쏙 빠질 정도다.

김 감독은 "지휘만 해도 긴장되고 어려운 게 공연인데, 연주도 해야 하고, 사방에 있는 관객들의 호흡도 느껴야 한다.

박수가 길게 이어지는지 짧게 끊기는지에 따라 곡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며 "사이렌 소리, 술잔 깨지는 소리 등 음향효과도 타이밍에 맞춰 넣어야 하고, 챙겨야 할 것들이 참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김 감독의 몸짓은 카메라에 찍혀 무대 양 끝에 자리 잡은 오케스트라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연주자들은 각자 앞에 높인 2개의 모니터를 통해 김 감독의 지휘를 확인하고 선율을 만들어낸다.

"저희끼리 신호가 있어요.

공연 중 신나는 음악에 어깨를 들썩이는 건 단순한 쇼맨십이 아니에요.

제가 손을 쓰지 못할 때 연주자들은 제 몸을 보거든요.

어깨를 들썩이는 것도 그렇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거나, 손을 높이 들었다 내리면서 피아노 연주를 시작하는 이 모든 게 사인이에요.

몸동작이 지휘가 되는 거죠."
김문정 음악감독 "피아노 치며 어깨 '들썩' 이것도 다 지휘죠"

김 감독은 뮤지컬 음악은 듣고 있으면 그림이 그려져야 한다고 했다.

특정한 형식에 갇혀있지 않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뒤섞여 상상 속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뮤지컬 음악의 매력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그레이트 코멧'은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공연에서는 차이콥스키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전통 클래식풍의 음악부터 팝, 록, 힙합, EDM(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등 현대적인 음악까지 다양한 음악들이 경계를 넘나들며 조화를 이룬다.

어떤 순간에는 마치 클럽에 온 것처럼 모든 악기가 화려한 소리를 내며 현란한 음악을 만들다가, 어떤 순간에는 기교 하나 없는 피아노 건반 소리만 흘러나오기도 한다.

김 감독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품인데 음악이 아주 영리하다.

러시아의 지역적 특성이 나오면서도 화성을 비트는 현대적인 작곡법이 잘 버무려져 있다"며 "배우가 음정을 틀린 것 같은 불협화음이 나오는 부분도 있는데 드라마가 어색하고 불편한 분위기로 흘러가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화음을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악기를 연주하는 배우들이 있는 것도 이 공연의 특색이다.

연기자이면서 동시에 연주자인 '로빙뮤지션' 10여명은 객석과 무대를 넘나들며 아코디언, 바이올린, 비올라, 클라리넷, 기타 등을 연주한다.

여기에는 연기에 도전하는 연주자도 있고, 작품 때문에 악기를 새로 배운 연기자들도 있다.

극의 주인공인 '피에르'(홍광호·케이윌)도 피아노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아나톨(이충주·박강현·고은성)은 바이올린 활을 휘두른다.

김 감독은 "로빙뮤지션 중에는 오케스트라에 있던 연주자들도 있는데 노래와 춤을 배우면서 저한테 속았다고 하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원래는 배우들이 객석에 나가서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 있어서 연습도 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다 빼게 됐다"며 아쉬워했다.

김문정 음악감독 "피아노 치며 어깨 '들썩' 이것도 다 지휘죠"

사실 '그레이트 코멧'은 지난해 9월 개막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막을 올리지 못했고, 관객들이 참여하는 부분을 축소해 올해 개막했다.

그런데도 무대 안에 객석을 배치하고, 배우들이 객석에서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이끄는 실험적인 시도들로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의미에요.

'이런 뮤지컬도 있어요'라는 선택지를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거죠. 좋아하는 음식만 내주기보다는 여러 음식을 차리고, 그중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물론 이런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 낯설어하는 관객들도 있다.

김 감독은 그런 관객들에게 퍼포먼스 자체로 공연을 즐겨달라고 부탁했다.

방대한 원작 소설인 '사랑과 전쟁'에서 70페이지 분량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서사를 꼼꼼하게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배우와 오케스트라의 경계가 무너지고, 관객들이 참여할 수 있다는 색다른 경험을 즐기다 보면 재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감독은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야 공연이 더욱 풍성해진다"며 " 함성은 못 질러도 손뼉을 치거나 발을 구르는 건 가능하니까 열린 마음으로 공연에 오셔서 온전히 즐기다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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