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아버지가 70여 년 만에 누명을 벗어 그래도 마음의 짐을 덜었어."
제73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열린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을 찾은 양수자(79) 씨는 애써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이젠 억울함 풀어수강?"…4·3평화공원에 희망의 무지개

양씨는 4·3 당시 5식구를 모두를 잃었다.

양씨가 겨우 6살 때 일이다.

양씨 가족은 밖으로 나섰다 총살을 당했다.

당시 칼에 찔렸던 양씨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

양유빈, 현경옥, 양정자, 양신자, 그리고 이름을 미처 갖기도 전 죽은 막내 남동생까지. 그는 위패 하나하나를 찾고, 그리운 얼굴 만지듯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양씨는 "매년 4·3 때마다 간단히라도 제를 올리려고 위패봉안실을 찾는다"며 "몇십 년을 왔지만, 여기만 오면 그때 그 기억으로 심장이 떨린다"고 말했다.

양씨는 "그래도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아버지가 지난달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예년보단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며 "하늘에서 우리 모든 식구가 아무런 억울함 없이 편히 쉬기만을 바란다"며 눈물을 훔쳤다.

비가 퍼붓고 우산이 뒤집어질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부는 궂은 날씨였지만 위패봉안실 인근 외부에 마련된 행방불명인 묘역에도 추모의 발길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어찌나 날씨가 심술궂은지 매년 유족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구슬프게 울어댔던 까마귀들도 이날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악천후를 뚫고 봉긋이 떠오른 무지개가 유족의 마음을 위로했다.

"이젠 억울함 풀어수강?"…4·3평화공원에 희망의 무지개

장성한 자식들은 제를 올리는 아버지가 비를 맞지 않게 우산을 받쳐 들었다.

땅은 이미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질퍽해졌는데도 유족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마를 땅에 맞대며 절을 올렸다.

유족 김영일 씨는 아내 오수경 씨, 처형 오은혜 씨와 함께 이른 오전부터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았다.

그는 4·3 당시 군경에 끌려가 행방불명 된 아버지 김재홍 씨와 처남 오재두 씨에게 제를 올리기 위해 차롱(바구니 형태의 그릇을 일컫는 제주어)에 갖가지 음식을 준비해 왔다.

73주년 4·3을 맞이하는 소감을 묻자 김씨는 "새롭다.

옛날에는 (4·3에 대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어려웠는데 이제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4·3 특별법 개정으로 일괄재심을 하게 되면 빨리 명예 회복도 이뤄질 것이라고 본다"며 "옛날 토벌대와 군경들로부터 희생당했다는 게 너무나 가슴이 아프지만, 오늘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정웅(82) 씨는 홀로 행방불명인 묘역을 찾아 4·3 당시 군에게 끌려가 소식이 끊긴 아버지와 총살당한 작은아버지 표석 앞에서 우산도 없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제를 지냈다.

그는 "내가 6살 때 아버지를 잃고 벌써 80이 넘었다"며 "비록 아버지는 억울하게 돌아가셨지만, 4·3특별법 개정에 발맞춰 앞으로 4·3 문제를 명확히 밝혀 남아있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이젠 억울함 풀어수강?"…4·3평화공원에 희망의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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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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