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임시주택 머무는 이재민…불탄 나무 위로 활짝 핀 봄꽃
[르포] '강원산불 2년' 아물지 않은 상처·다시 돋는 희망
"2년 전에도 꽃이 활짝 폈었는데…그때 마을이 활활 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래도 꽃은 보기 예쁘네요.

"
2일 오전 강원 고성군 토성면 인흥1리의 임시주택에서 밭일에 나서던 김융일(81)씨는 앞마당에 핀 매화를 보며 2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2019년 4월 4일 인제와 고성·속초, 강릉·동해에서는 대형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와 인흥리, 성천리, 용촌리, 봉포리, 천진리는 불길이 마을을 휩쓸어 140여 채의 건물이 소실됐다.

김씨 역시 화마에 집을 통째로 잃었다.

그는 아내와 함께 2년째 산불 이재민을 위한 임시주택에 살고 있다.

이웃들은 새집을 짓고 이사 갔지만 김씨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기둥 하나 올리지 못했다.

임시주택 바로 맞은편 공터가 옛 집터다.

불탄 건물을 허문 뒤 새집을 짓지 못해 담 귀퉁이에 작은 텃밭만 가꿨다.

김씨는 아내와 함께 밭에 비료를 주며 땅을 일궜다.

김씨 부부는 다음 달이면 임시주택에 들어온 지 2년이 지난다.

규정상 이곳에서는 2년밖에 머물 수 없다.

그는 "군청에 다시 사정을 얘기해봐야죠"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임시주택 앞에는 진분홍빛 옥매화가 활짝 폈다.

그의 아내가 지난해 심은 것이다.

[르포] '강원산불 2년' 아물지 않은 상처·다시 돋는 희망
2년 전 산불로 총 267세대가 임시주택에 머물렀다.

이들 중 76세대는 김씨 부부처럼 여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산불은 주불 진화까지 3일 동안 인제, 고성·속초, 강릉·동해 5개 시군에서 순차적으로 발생했다.

화마는 축구장 4천17배 넓이인 산림 2천871.7㏊를 태워버렸다.

고성·속초의 산림 소실 면적이 1천266.62㏊로 가장 넓었다.

식목일을 사흘 앞둔 이날도 화재 피해지에서는 나무를 심고 가꾸는 작업이 분주히 이어지고 있었다.

토성면 원암리에서 만난 고성군산림조합 직원 3명은 벌채를 마치고 민둥산이 된 산불 현장에 어린 소나무를 심고 호스를 끌어와 흠뻑 물을 주느라 분주했다.

삽과 호스 뭉치 등 장비를 들고 가시나무 가지를 헤치며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이들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혔다.

[르포] '강원산불 2년' 아물지 않은 상처·다시 돋는 희망
한 직원은 "이제 나무 심기 작업은 거의 마쳤고 심어놓은 묘목에 물 주기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며 "주말에 비 소식이 있는데 흠뻑 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부지방산림청과 강원도에 따르면 올해 고성 3.6㏊, 강릉 23.5㏊를 마지막으로 동해안 산불 피해 국유림 73.4ha에 대한 나무 심기 작업이 모두 완료된다.

사유림도 대부분 조림 작업을 마쳤다.

다만 보상 문제 등으로 정부와 합의를 마치지 못한 땅에는 검게 불탄 나무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화마에 숯처럼 변한 나무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 앞에는 노란 개나리가 활짝 펴 봄을 알렸다.

고개를 돌리면 소나무와 굴참나무 묘목을 잔뜩 심은 산등성이가 보였다.

그 옆으로 진달래가 지천으로 흐드러졌다.

자연은 2년 전 불길의 상처를 천천히 아물게 하면서도 봄의 색깔을 환하게 뽐냈다.

[르포] '강원산불 2년' 아물지 않은 상처·다시 돋는 희망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