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시위학생 숨겨주다 노점 시작 서길자 할머니…별세 소식에 추모 행렬 줄이어
[기자수첩] 전남대서 40년 좌판 '인문대 엄니'의 죽음이 남긴 것

한 장소를 오랜 시간을 지킨 인물은 수많은 이야기와 추억을 남기고, 그 장소·시간을 공유한 이들에게 존경보다 무게감 있는 존중을 받기도 한다.

국립대학 전남대학교에서 40여 년 동안 좌판을 한 서길자(78) 할머니가 그런 인물이다.

서 할머니가 지난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발인까지 마친 시점, 할머니의 별세 소식이 뒤늦게 입소문을 타고 알려져 그를 존중하는 인연들이 마련한 자그마한 추모공간에는 종일 할머니를 추억하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평범한 좌판 할머니의 죽음, 그가 전남대를 거쳐 간 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남겼는지 되짚어보면 추모 행렬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서 할머니가 본격적으로 전남대 학생들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80년으로 추정된다.

할머니는 전남대 인문대학 건물 뒤편 주택에서 홀로 5남매를 키웠다.

1980년 5월 계엄군이 치고 들어와 학생들이 총칼과 곤봉을 피해 몸을 피할 곳을 찾자 할머니는 다락방을 내주었다.

5·18 당시 계엄군에 둘러싸여 큰 고초를 치를 뻔도 했다.

그런 시대의 아픔을 계기로 맺은 학생들과의 인연이 이어져 할머니는 전남대 내에서 이때쯤 좌판을 벌였다.

당시에만 해도 학교 주변에 별다른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던 때라 할머니가 붉은색의 고무대야에 놓고 파는 떡이며 과일은 공부하거나, 거리에서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지친 학생들에게 배고픔을 달래는 수단이 됐다.

할머니의 파는 물건은 떡, 과일, 오징어, 꽈배기, 아이스크림 등 계절과 시절에 따라 달라졌다.

주머니 잔돈을 털어 할머니 행상의 물품들을 사 먹는 학생들도 40여 년 동안 수십만 명이 거쳐 갔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대학을 지켰다.

5·18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한 박승희 열사 등 민주화의 역사 속 주인공들을 할머니는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들은 '관현이', '승희'로 다시 할머니의 입을 거쳐 후배 학생들에게 전해지기도 했다.

[기자수첩] 전남대서 40년 좌판 '인문대 엄니'의 죽음이 남긴 것

그런 할머니를 지켜준 것은 학생들이었다.

과거 학교 측이 학내 노점상을 정리하려고 나섰는데,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생들이 학내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들을 보호하며 장사를 계속할 수 있게 도왔다.

결국 대학 측은 당시 학내 좌판 할머니 4명에 대해서는 노점상 단속을 유예하기도 했다.

함께 장사하는 할머니 4명 중 3명이 돌아가시거나, 노령을 이유로 장사를 그만둬도 서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홀로 남아 전남대에서 학생들을 매일 만났다.

할머니는 학생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사비를 털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건네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제나 그 자리에 가면 있을 것 같던 할머니는 지난 26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환한 미소 속에 감춰져 건강한 줄만 알았는데, 몸 안에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고 너무 늦게 이 사실을 알았다.

할머니가 파는 귤을 까먹던 학생은 교수가 되기도 했고, 20대 대학 신입생은 장성해 제 자식을 다시 대학을 보낼 만큼 세월이 지났다.

그 세월 동안 할머니를 거쳐 간 전남대 동문들과 대학 주변 주민들은 그가 평소 장사하던 장소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국화꽃을 놓았다.

할머니의 유가족들은 그런 추모객들이 고마워 할머니가 평소에 팔던 사과를 상자째 가져다 놓고 추모객들이 가져가게 했다.

돈이 없어 주린 배를 쥐는 것을 알고 과일과 꽈배기를 내준 88학번 학생은 할머니의 별세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와 눈물을 흘렸고, 대학별·과별 동문은 수명씩 모여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

2000년대 등록금 투쟁을 위해 단식을 이어가던 학생의 두 손을 잡고 "건강부터 챙기라"고 당부하던 할머니를 잊지 못한 당시 학생 대표는 학내 인문대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온종일 지키고 있다.

20여 년간 할머니와 인연을 이어간 정달성 광주 마을발전소장은 "'인문대 엄니', '인문대 벤치 할머니'를 불리던 서 할머니를 그냥 보내드릴 수 없어 장례식장에서 유가족과 상의해 추모공간을 마련했다"며 "언제나 학생들의 편이었던 할머니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광주의 대학에서 40여 년 동안 '청춘의 증인'으로 살아온 할머니에게 수많은 이들이 존중을 담아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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