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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릴리, 한미약품 상대로
'약가 인하' 손해배상 소송

한미약품 대리한 세종
IP·바이오 전문 변호사 앞세워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승소
조현병 복제약 10년 소송…세종, 글로벌 제약사 꺾다

누구나 살면서 병치레를 겪고 약을 먹는다. 만약 내가 앓는 병을 치료해주는 약이 세계에 단 한 종류밖에 없다면 어떨까. 울며 겨자 먹기로 부르는 값에 약을 사야 할 수도 있다. 다행히 현실에선 이런 일이 드물다. ‘오리지널’ 약의 특허가 만료된 이후엔 다른 제약사들이 오리지널 약의 주성분과 효능이 같은 ‘제네릭’ 약(복제약)을 제조해 팔 수 있어서다. 또 국내에선 대부분의 약에 보험이 적용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약값의 상당 부분을 부담한다. 다만 정부는 제네릭 약이 출시되면 오리지널 제약사가 공단에 청구할 수 있는 오리지널 약값의 최고 금액(약제 상한금액)을 낮추는 독특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런데 오리지널 약을 제조한 회사가 제네릭 약을 만든 후발주자에 ‘당신 회사 때문에 약가가 인하돼 손해를 봤다’며 배상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런 일이 2010년 일어났다. 세계 굴지의 제약회사 일라이릴리의 한국지사인 한국릴리는 국내 토종 제약회사 한미약품을 상대로 떨어진 약값만큼 손해배상을 하라는 소송을 냈다. 10여 년간 이어진 분쟁은 대법원이 최근 한미약품의 손을 들어주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국내 최초로 오리지널 약의 약가 인하에 대한 손해배상 여부를 다퉜던 사건으로, 세종(한미약품 대리)의 지식재산권(IP) 및 바이오 분야 변호사들이 김앤장(한국릴리 대리)을 상대로 일궈낸 승리였다.
“정당한 특허 도전…손배 필요 없어”
이 소송은 2008년 한미약품이 “일라이릴리의 조현병 치료제 ‘자이프렉사’의 성분이 이전의 조현병 약과 비교해 진보성을 갖지 않는다”며 특허 무효 심판을 청구하면서 시작됐다. 특허법원은 한미약품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이에 한미약품은 ‘올란자정’이라는 제네릭 약을 내놨다.

문제는 대법원이 특허 무효 판결을 뒤집으면서 불거졌다. 상고심을 통해 자이프렉사의 특허가 되살아나자, 제네릭 약을 출시한 한미약품은 졸지에 특허침해자가 됐다. 상황이 바뀌자 한국릴리는 “한미약품이 제네릭 약을 출시해 우리 약의 가격이 20% 떨어졌으니 이로 인해 본 손해를 배상해달라”고 요구했다. 소송가액은 15억원이었다.

1심과 2심 모두 한미약품이 이겼다. 법원은 약가 인하에 대한 책임이 한미약품에 있는 게 아니라고 봤다. 재판부는 “약가 인하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처분에 따른 것이고, 한미약품은 정당한 특허 도전을 통해 제네릭 약을 출시했기 때문에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오리지널 약의 특허권자가 한국릴리가 아니라 미국 본사인 일라이릴리란 점에서 한국릴리가 손해배상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도 봤다. 한국릴리 측은 자이프렉사의 ‘독점적 통상실시권자’(특허발명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지위)임을 주장하며 한미약품의 손해배상을 주장했다. 한미약품을 대리한 세종 측은 “일라이릴리가 한국릴리에 독점적 실시권을 부여했다는 문서가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대법원은 한국릴리의 상고를 기각하며 원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제약업계는 이 소송을 두고 “외국계 제약사와 국내 제약업계 사이의 ‘불꽃 튀는 전쟁’이었다”고 말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의 약 99%가 외국계 제약사의 오리지널 약을 복제한 제네릭 약이기 때문이다. 한미약품이 패소했다면 외국계 제약사들이 국내 회사들에 수백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줄소송’이 잇따랐을 것이란 얘기다. 국내 제약사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제네릭 약 개발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세종…IP·바이오 분야 전문가들 활약
이 사건에서 한미약품을 대리한 법무법인 세종의 박교선·임보경 변호사는 지식재산권과 관련한 소송 경험이 풍부하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박교선 변호사는 한국지적재산권변호사협회(KIPLA) 회장으로 활동하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지재권 관련 자문을 맡는 등 특허 침해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임보경 변호사는 사법시험에 앞서 변리사에 합격한 이력이 있다. 런던 정치경제대학에서 지식재산권 전공으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부터 세종에서 근무하며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및 라이선싱 분야 자문 업무를 맡아왔다. 함께 승소를 이끈 차효진 변호사는 약사 자격증을 지닌 바이오 및 특허 분야 전문가다. 2003년 서울대 약학대학을 졸업했고, 2008년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16년부터 3년간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자문기관인 중앙약사심의위원회에서 위원회 소속 전문가로 활동했다.

임 변호사는 이번 약가 인하 피해보상 소송과 관련해 “약가 인하의 목적은 환자들의 부담금을 줄이고, 공단의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데 있다”며 “만일 한미약품이 패소했다면 비슷한 분쟁이 반복될 시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2~3년 동안 제네릭 약 발매는 늦춰질 것이고 오리지널 약은 기존의 약가를 유지하면서 환자와 공단 모두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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