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피해자에 성추행 입증하라는 경찰
성폭력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미성년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떠넘겼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피고소인의 아버지가 서울 강남의 유명 병원장이어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2019년 집에서 외사촌 오빠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A양(17)은 지난해 11월께 서울 강남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은 고소 3개월이 지난 올해 2월 피고소인에게 소환통보를 했지만 피고소인은 한 달간 출석하지 않았다. A양의 아버지가 지난 4일 경찰청에 수사를 촉구해달라고 민원을 넣은 뒤에야 첫 피고소인 조사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 당시 A양은 고교 1학년으로 부모가 이혼한 상태에서 어머니와 외삼촌 집에 살던 중이었다. 외삼촌은 강남 유명 병원의 원장이고 피고소인은 그의 아들이다. 가족들에게 피해 사실을 말하자 친모와 외삼촌 가족들 모두 ‘같이 사니 그냥 넘어가라’는 식으로 대처해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울증을 앓던 그는 지난해 11월 성수대교 남단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경찰에 의해 발견됐다. 이 사건으로 이혼해 따로 살던 아버지가 피해사실을 알게 돼 고소를 했다. A씨는 현재 아버지와 살고 있다.

A씨 측은 “피고소인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거부하자 담당 수사관이 우리에게 ‘그럼 피해자부터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하자’고 했다”고 설명했다. A양의 아버지는 “경찰이 가해자는 시간을 주며 기다려주고, 가해자가 조사를 안 받겠다고 하니 곧바로 ‘피해자가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한 게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경찰은 친모와 피해자 대질 신문도 시도했다. 친모는 성추행 피해 당시 ‘얹혀사니까 넘어가자’는 식으로 말해 피해자가 우울증을 겪고 극단적 선택을 하게 만든 사람 중 하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친족간 성폭력 피해자는 보복을 두려워하는 특징이 있다”며 “경찰은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고소인이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거부해 할 수가 없었다”며 “피해자 진술을 보강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의사를 물어본 것”이라고 했다. A씨와 친모의 대질조사를 시도한 것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기억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최다은/김남영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