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술 마신 의사 제왕절개에 아기 잃어…살인죄 상응 처벌" 요구
의료법에 '음주 의료행위' 처벌 규정 없어…'자격 정지' 등 행정처분 가능
[팩트체크] 의사의 '음주 수술' 형사처벌 가능할까?
술 마시고 메스를 잡은 의사를 형사 처벌할 수 있을까?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주치의의 음주 수술로 뱃속 아이를 잃었다'는 글이 게재되면서 담당 의사의 법적 처벌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주치의의 음주 수술로 뱃속 아기를 잃은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한 글쓴이는 한 산부인과에서 딸·아들 쌍둥이를 출산하는 과정에서 술을 마신 주치의가 제왕절개 수술을 맡아 아들이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주치의와 당직의의 의사면허를 당장 박탈하고, 살인죄에 상응한 처벌을 받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소식을 전한 기사에는 "엄벌에 처해달라", "술 마시고 수술하는 의사는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연달아 게재됐다.

이에 연합뉴스는 음주 의료행위를 한 의사를 형사 처벌할 수 있는지 관련 법 조문을 살펴봤다.

[팩트체크] 의사의 '음주 수술' 형사처벌 가능할까?
◇'음주 의료' 처벌 규정 없어…의료사고시 과실치사상 적용 가능
기본적으로 의사의 의료행위가 의료사고로 이어졌다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으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가수 고(故) 신해철 씨 의료사고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4년 10월 신 씨에 대한 위 축소 수술을 집도했다가 심낭 천공을 유발해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 강 모 씨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됐고, 2018년 대법원에서 강 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이 확정됐다.

따라서 법 집행 당국이 이번에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사건과 관련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는 상황도 일견 가능해 보인다.

경찰은 현재 의료사고 여부를 가리기 위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대한의사협회 등에 감정을 요청한 상태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상 '음주 의료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의사가 술을 마시고 집도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을 하지는 않기에, 주취 상태에서 수술을 한 의사도 의료사고가 발생해 문제가 되지 않는 한 형사상 처벌을 받지 않는다.

의사가 술을 마셔 '맨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메스를 잡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비윤리적인 처사 같지만 그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법 규정은 없는 것이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의료법상 음주 의료행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이 두 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2019년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부 전공의가 근무 중 술을 마시고 진료를 한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지며 사회적 공분을 샀고, 음주 의료행위를 직접 처벌하는 입법 필요성이 대두됐다.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의료인의 직업윤리 문제를 벗어나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미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직접적인 법률 규제가 필요하다는 각계 의견이 있다"며 의료인의 음주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위반시 면허취소와 함께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타 법안에 밀려 국회 법안심사 소위원회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인 의원실 관계자는 24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다른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 등 논의가 필요한 법안이 많아 발의한 법안이 후순위로 밀렸고, 결국 법안심사 소위에 상정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행정처분 대상이나 '솜방망이' 논란…5년간 7명 '자격정지 1개월'
음주 의료행위가 형사 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자격정지와 같은 행정처분을 받을 수는 있다.

의료법 제66조 1항 1호에 따르면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했을 경우, 1년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할 수 있다.

여기서 '의료인의 품위 손상 행위'는 같은 법 시행령 제32조 1항에 명시돼 있는데, ▲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하는 진료행위 ▲ 비도덕적 진료행위 ▲ 거짓 또는 과대 광고행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음주 의료행위는 이중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인 지난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 6월까지 약 5년 동안 음주 의료행위를 한 의사 7명이 비도덕적 진료행위 사유로 자격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을 받은 바 있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그 처분이 '솜방망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자격정지보다 수위가 높은 행정처분인 의사 면허취소는 요건이 더 까다롭다.

정신질환자이거나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와 같이 의료법 제8조에서 규정한 의료인 결격사유에 해당하면 면허가 취소된다.

또한 자격 정지 처분 기간 중 의료행위를 하거나 3회 이상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등에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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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