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발이 펄럭이는 대법원 모습. 연합뉴스
깃발이 펄럭이는 대법원 모습. 연합뉴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유리 외벽이 빛을 반사해 인근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로 눈부심을 겪고 있다면, 피해를 야기한 아파트의 시공사가 이를 보상해야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아파트 빛반사 문제가 소송전으로 이어져 결론까지 난 국내 최초의 사례다.

대법원 제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부산 해운대 경남마리나아파트 일부 주민들이 현대산업개발(현 HDC)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와 피고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고일부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해운대아이파크는 현대산업개발이 2011년 완공한 최고 72층 규모의 아파트다. 외장재로 '로이(low-E)' 복층유리(2장 이상의 판유리 사이에 일정 간격을 두고 시공한 유리)를 사용했다.

로이 복층유리는 가시광선 반사율이 29.6%, 태양광선 반사율이 37.8% 수준이다. 일반적인 복층유리가 햇빛을 반사하는 수준(가시광선 반사율 16.8%·태양광선 반사율 13%)보다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2013년 해운대아이파크에서 300m 가량 떨어진 경남마리나아파트의 일부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면서 드러났다. 경남마리나에 거주하는 주민 60명은 "해운대아이파크 유리 외벽에서 반사되는 빛 때문에 집안에서 눈을 뜨기 힘들고, 이로 인해 생활방해를 받고 조망권·일조권을 침해받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원고인 경남마리나 주민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해운대아이파크 외벽에서 반사되는 햇빛으로 인해 원고 측이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넘을 정도로 생활방해를 받는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원고인 주민들은 동지(冬至)를 기준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조시간이 연속해 2시간 이상 확보되거나,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 사이 중 일조시간이 4시간 이상 확보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운대아이파크 건물 증축으로 인해 일조권을 방해받는다고도 볼 수 없다"고 했다.

경남마리나 주민소송단은 이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부경대학교 연구팀에 빛반사 시뮬레이션을 의뢰하고 두 달간 감정작업을 진행했다. 그 결과 빛반사는 연간 최대 187일 나타났고, 이 현상의 연간 지속시간은 1시간 21분∼83시간 12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피해를 주장하는 경남마리나 세대 내부에 들어오는 빛의 휘도(사람의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가 최소 기준치의 2800배에 이른다는 점도 밝혀냈다.

2심은 연구팀의 감정결과와 현장검증 등을 토대로 소송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경남마리나 일부 세대의 경우 빛반사 밝기가 시각정보에 대한 지각능력을 순간적으로 손상시키는 '빛반사 시각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정도를 넘었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이에 따라 "HDC현대산업개발이 주민 34명에게 재산가치 하락과 그로 인한 위자료로 1인당 132만∼687만원씩 총 2억100만원을 지급해야한다"고 판단했다. 소송단 일부인 16명에 대해선 여름철 빛반사 지속시간이 없다는 연구팀의 감정결과에 따라 피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도 2심과 같은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 재판부는 "소송단 주민들이 건물 외벽유리에 반사된 태양광으로 인해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은 생활방해를 입은 원심의 결론은 정당하다"며 HDC현대산업개발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빛 반사로 인해 냉방비 지출이 늘었으니 냉방비용도 보상받아야한다'며 경남마리나아파트 주민 측이 제기한 상고도 "원심이 아파트의 시가하락 손해에 반영해 판결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