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길어지면 이자 '눈덩이'
"빨리 선고해달라" 부탁도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는 추세 속에 판결 확정 전까지 지급해야 하는 연 5%의 법정이자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대법관 13명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앉아 있는 모습. 연합뉴스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는 추세 속에 판결 확정 전까지 지급해야 하는 연 5%의 법정이자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대법관 13명이 선고를 위해 대법정에 앉아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30부는 분식회계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대우조선해양에 원고인 국민연금공단 등에 612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실제 대우조선해양이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이보다 153억원 더 많은 765억원이다. 이 사건은 5년 전인 2016년에 처음 소송이 제기됐다. 이 기간에 적용되는 민법상 금리 연 5%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대우조선해양이 재판 후 항소하지 않은 채 돈을 갚지 못하면 연 12%에 해당하는 지연이자까지 물어야 한다. 그렇다고 항소한다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재판 기간에 연 5%의 고금리를 물 수 있는 위험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법원 안팎에서는 고금리의 법정이자가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수준까지 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자가 소송가액의 20~30% 넘겨
법원이 각종 소송에 적용하는 법정이자는 민·상법상 이자와 소송촉진특례법상 이자로 나눌 수 있다.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매년 붙는 민·상법상 이자는 각각 연 5%, 연 6%다. 이 금리는 민법과 상법이 제정된 1958년과 1962년 후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과거 1980~1990년대 고금리 시절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제로금리에 가까운 초저금리 시대에 연 5~6%의 금리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6년 소송 패소하니 이자만 3억…"길어질까 무서워 재판 못해"

더구나 재판 기간은 점점 더 길어지는 추세다. 규모가 큰 손해배상 사건의 경우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면 4~5년을 넘기기 일쑤다. 법조계에서 “경제 사정과 재판 운영 상황에 맞게 금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앞서 대우조선해양 사건처럼 이자가 소송가액의 20~30%를 넘기는 사례는 적지 않다. 지난해 2월 대법원은 ‘4대강 살리기’ 공사 입찰 과정에서 담합행위가 적발된 SK건설과 삼성물산에 각각 9억4080만원, 6억7200만원을 국가에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 재판은 2014년 시작해 2016년 1심, 2018년 2심 판결이 나왔다. 그로부터 2년 뒤 대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 계약은 상법이 정한 상행위에 해당해 연 6%의 이자가 붙었다. 소송촉진법상 이자는 제외하고 6년간 상법상 이자만 단순 계산해도 각각 3억3000만원, 2억4000만원이 붙는다.
○민사 재판기간은 늘어나
법조계에서도 지금의 법정이자가 ‘고금리’라는 데 이견은 없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승소한 원고는 진작에 받았어야 하는 돈이므로 ‘페널티’ 성격의 이율을 가하는 것”이라면서도 “2021년 금리를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것은 맞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연 0.5%다. 기준금리가 현재의 법정이율과 비슷했던 시기는 20여 년 전인 1999년(4.75%) 정도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도 “이자 때문에 의뢰인이 부담을 느끼니 최대한 빨리 선고를 부탁한다고 재판부에 요청한 경우도 있다”며 “재판이 길어질수록 하루하루 이자가 쌓이는 것이어서 항소할 때 의뢰인 눈치를 보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사건 처리율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처리율은 그해 접수된 사건 수 대비 처리된 건수를 의미하는데, 민사 본안사건 처리율은 2018년 97.9%, 2019년 97.0%, 2020년 97.2%로 기준(100%)을 밑돌고 있다. 그렇다고 접수 사건이 급증한 것도 아니다. 같은 기간 각급 법원에 접수된 민사 본안사건은 2018년(103만7397건)부터 2019년(103만3288건), 2020년(101만2841건) 꾸준히 줄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하급심부터 더 충실히 재판하자는 기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등법원의 부장 승진 제도가 폐지되면서 판사들이 사건을 빨리 처리해야 할 동력이 사라진 측면도 있다”며 “재판이 길어지면 과도한 이자를 포함한 유·무형의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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