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 재직시 30여년간 복지재단 정기후원…퇴직 후 폐지 모아 나눔 실천
"기부하면 살아있음 느껴…죽을 때까지 봉사할 것"

"어릴 적 정말 어렵게 살았어요.

좁쌀 한 움큼으로 멀건 죽을 끓여 끼니를 때웠죠. 어머니는 그런 상황에서도 죽 한 그릇을 남에게 베풀어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이셨어요.

"
일평생 기부와 봉사를 실천한 이상일(76) 할아버지를 지난 10일 경기도 안양 평촌의 한 먹자골목 도로변에서 만났다.

180㎝는 넘어 보이는 키에 마른 체구, 큰 손발로 눈길이 갔다.

두껍고 큰 손 마디마디는 오랜 세월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 굳은살이 자리잡혀 울퉁불퉁했다.

[#나눔동행] "어머니 가르침대로"…일평생 기부 실천한 이상일 할아버지
안양교도소에서 33년 8개월간 제소자 재활교육을 담당한 전직 교도관 출신인 이 할아버지가 기부를 시작한 건 취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고 했다.

"제대로 된 신발도 신지 못할 정도로 힘들게 자랐고, 취업은 했어도 열등의식이 계속됐어요.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싶어 극단적인 생각도 하며 자포자기 심정으로 지냈는데, 문득 어머님의 가르침이 떠올랐죠."
남의 집 일을 도우며 번 돈으로 자식을 홀로 키운 이 할아버지의 어머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배부르고 난 뒤 베풀려 하지 말고 네가 배고프더라도 더 어려운 사람에게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고 했다.

[#나눔동행] "어머니 가르침대로"…일평생 기부 실천한 이상일 할아버지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고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기 시작했고, '어려운 사람을 위해 기부해달라'는 반상회 회보를 계기로 작게나마 기부를 시작했다.

이 할아버지는 보육원, 장애인 시설, 나병 환자 등 전국의 사회복지시설을 찾아다녔다.

네 식구 살림살이에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틈날 때마다 보육원 아이들을 데리고 유원지를 데려가거나 용돈을 줬고, 장애인과 나병 환자들에겐 손수 자장면이나 백숙을 요리해주거나 돼지를 잡아 구워주기도 했다.

혼자 하던 기부와 봉사는 동료들에게까지 번져나갔다고도 했다.

[#나눔동행] "어머니 가르침대로"…일평생 기부 실천한 이상일 할아버지
이 할아버지의 기부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예전에 한 라면회사에서 라면 포장지에 있는 스티커를 300장 모으면 대관령 관광시켜주는 행사가 있었어요.

보육원 아이들을 위해 교도소에서 버려지는 포장지를 다 모아다가 애들 관광도 보내줬어요.

내가 직장에서 바른 소리만 해서 그런지 승진 못 하고 말단으로 퇴직했어요.

가진 돈이 별로 없으니 기부하는 방법을 매번 고민했죠."
재활용을 위해 깨끗한 계란판을 모아다가 기증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노력에 2003년 한 일간지 환경대상에서 상금 수백만원을 받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상금을 나눠 한국심장재단에 100만원을 기부하고 나머지로는 세탁기를 구매해 보육원과 장애인 시설에 기증했다.

[#나눔동행] "어머니 가르침대로"…일평생 기부 실천한 이상일 할아버지
남이 더는 쓰지 않는 옷이나 이불, 담요를 구해다 모두 깨끗이 빨아 포장한 뒤 필요한 기관에 보내주기도 했다.

18년 전 퇴직한 뒤로는 길가에 버려진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판 돈을 차곡차곡 모아 전액 기부하고 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 받아 남들보다 편하게 생활할 수 있었어요.

국민에게 보답해야 할 길을 생각하다 보니 이렇게 폐지를 주워 기부하게 됐죠. 죽을 때까지 계속할 거예요.

"
몸이 고단하지 않냐는 질문에 이 할아버지는 "힘들다.

그렇지만 힘들게 땀을 흘려 번 돈으로 남을 도울 때 더 보람을 느낀다.

그늘 밑에 편하게 누워 사는 인생보다도"라고 답했다.

[#나눔동행] "어머니 가르침대로"…일평생 기부 실천한 이상일 할아버지
40년 가까이 쌓인 할아버지의 기부 내역은 그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고 있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1983년부터 현재까지 국내 결연아동 사업 지원으로 총 355만5천300원을, 한국심장재단에는 1995년부터 총 234만원을, 사랑의열매에는 2008년부터 총 441만5천530원을 기부했다.

이밖에 밝혀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익명의 기부도 상당했다.

이 할아버지의 나눔에서 액수는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남을 돕는 할아버지의 마음과 실천이 더 큰 울림을 줬다.

[#나눔동행] "어머니 가르침대로"…일평생 기부 실천한 이상일 할아버지
인터뷰를 마친 할아버지는 폐지가 한가득 담긴 손수레 쪽으로 바삐 걸어갔다.

고물상에서 1만7천원 정도 받을 분량이었다.

"기부하면 '내가 죽지 않았구나', '살아있구나' 느껴요.

저보다 훌륭한 기부자, 봉사자들이 많아요.

액수도 적은데 저를 알리는 게 민망하기만 하네요.

다음에 또 봅시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