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류지 34평형 일반분양가로 제공' 대의원회 통과
조합원 반발…서울시·은평구청 "총회 의결시 개입 못해"
조합장 성과급으로 아파트 특혜분양?…응암2구역 갈등
서울의 한 재개발조합이 조합장 성과급으로 신축 아파트 1채를 현재 시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조합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9일 은평구청과 응암제2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 조합원들에 따르면 조합장 A씨에게 조합의 신축 아파트인 '녹번역e편한세상캐슬아파트' 보류지 14채 중 1채를 1차 일반분양가에 제공하는 안이 최근 대의원회를 통과해 총회 안건으로 상정됐다.

보류지는 사업 시행자인 재건축·재개발조합이 여분으로 남겨두는 분양 물량이다.

분양 대상자(조합원)의 지분 누락·착오 발생이나 향후 소송 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총회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전체 조합원 1천500여명이 참여하는 투표에서 과반이 찬성하면 조합장이 해당 아파트를 추가로 분양받게 된다.

이 아파트는 2020년 5월 사용 승인 이후 1년이 채 되지 않았고, 34평형(110.659㎡)에다 '로얄층'인 16층에 있다.

같은 동·면적, 비슷한 층의 다른 물건 1차 일반분양가는 5억9천390만원이었다.

같은 동·면적 고층 세대의 최근 실거래가는 지난해 11월 말 12억원이었고, 현재 매물로 나온 같은 동·면적 아파트 호가는 15억원 정도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분양가 대비 시세 차익은 9억원이 넘을 수 있다.

조합이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자 일반 조합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은평구청 홈페이지 '구청장에게 바란다'의 공개 민원게시판에는 응암2구역 조합장의 보류지 취득을 막아달라는 취지의 글이 10여건 올라와 있다.

한 조합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해당 아파트는 다른 보류지들처럼 일반 공개입찰로 매각한다면 10억원 이상에 낙찰될 물건"이라며 "조합의 공동 재산을 시세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에 조합장에게 처분하는 것은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조합장 A씨는 지난 10여 년간 조합장 일을 해오며 매년 적지 않은 기본급과 상여금을 받아왔으므로 금전적인 보상을 충분히 받은 것"이라며 "성과금 명목으로 이런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했다.

특히 조합원들은 현재 보류지 처분에 관한 법규 미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같은 맹점이 드러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장이나 임원이 보류지를 특혜 분양받은 사례는 앞서 은평구 녹번 1-1구역(힐스테이트 녹번)을 비롯해 여러 차례 있었다.

응암2구역 조합장 A씨는 이런 전례를 들어 "인근 아파트도 조합장의 성과급을 인정해 보류지를 분양했다"며 문제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는 조합장 A씨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사무실로 여러 차례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남겼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79조에는 '사업시행자는 분양신청을 받은 후 잔여분이 있는 경우 정관 등 또는 사업시행계획으로 정하는 목적을 위해 그 잔여분을 보류지로 정하거나 조합원 또는 토지 등 소유자 이외의 자에게 분양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구체적 처분 방법은 적시돼 있지 않다.

서울시는 이를 보완하고자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 44조에 보류지를 적격 대상자에게 처분한 후 잔여분이 있는 경우 공개 경쟁입찰 방식을 따르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 조항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류지를 임의 처분하는 관행을 막으려고 조례를 만들었지만 강제할 방법은 없는 실정"이라며 "보류지 처분 방식을 상위법이 조례에 위임하도록 법을 개정해달라고 정부에 4년째 건의해왔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평구청도 조합원들의 민원에 대응해 "서울시 조례에 규정된 보류지 처분 방법을 준수하도록 행정지도를 했다"고 밝혔지만, 그 이상의 조처를 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은평구 관계자는 "법령상 보류지는 조합이 처분 권한을 갖고 있어 총회에서 의결되면 행정청에서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