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장관, 외교정책 연설에서 "다르게 가겠다" 선언
"민주주의 증진하려 했으나 작동않아 국민신뢰 상실"
유고·리비아 등 선례…'세계경찰' 영향력 축소될 수도
미국 '무력 통한 권위주의 정권교체' 정책옵션 버렸다

미국이 압도적 군사력을 사용해 권위주의 정권을 교체하는 정책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미국식 민주주의 전파를 위해 독재국가의 정권을 무력으로 바꾸는 전략은 미국의 적성국들이 겁내는 미국의 전통적 대외정책 일부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3일(현지시간) 외교정책 연설에서 "비용이 많이 드는 군사적 개입이나 무력으로 권위주의 정권을 전복하고자 시도함으로써 민주주의를 증진하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그는 "과거 이런 전략들이 시도됐으나 좋은 의도였음에도 작동하진 않았다"며 "(이는) 민주주의 증진에 오명을 씌우고 미국민이 신뢰를 잃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추진되는 파격적인 대외정책 기조로 관측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전임 미국 대통령은 직접 군사옵션을 거론하며 이란과 북한 등을 수시로 위협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출신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조차도 리비아 정권교체에 군사적으로 개입한 바 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연설에서 과거를 언급하며 "우리는 다르게 일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를 돌아볼 때 미국은 자신들의 뜻을 세계에 관철하는 수단으로 무력을 통한 정권교체를 수시로 시도해왔다.

오바마 행정부가 2011년 리비아를 공습해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린 사태가 대표적인 최근 사례다.

당시 카다피는 '아랍의 봄' 이후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폭격을 가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했고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들은 그해 3월 유엔으로부터 군사개입을 허락(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973호)받고 반군을 지원하는 공습을 단행했다.

카다피 정권은 결국 2011년 8월 무너졌다.

이에 앞서 빌 클린턴(민주당) 대통령이 이끌던 미국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옛 유고연방 대통령이 남부 자치주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알바니아인 인종청소를 저지르자 1999년 3월 북대서양조합기구(NATO·나토)군을 이끌고 베오그라드를 공습했다.

세르비아는 70일 가까이 이어진 공습 끝에 평화안을 수용했고 밀로셰비치는 이듬해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 쫓겨 하야하고 전범으로 기소돼 수감 중 사망했다.

블링컨 장관의 이날 선언을 두고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 유지를 옹호하는 일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해온 미국이 그 지렛대를 버리면 독재나 인권유린을 해소할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국제사회에서 큰 우려를 사고 있는 미얀마 쿠데타를 해결하는 데에도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로 수립된 정권을 무너뜨린 미얀마 군부는 시민들의 평화시위에 유혈진압을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군부에 권력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쿠데타 핵심 인사들을 제재했으나 국제사회의 말잔치 속에 상황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블링컨 장관은 "미얀마 국민에게 폭력을 자행하는 이들에 계속 단호한 조처를 내릴 것"이라고 경고하지만 유혈진압은 거세지고 있다.

그간 미국의 경고와 압박은 사실 무력사용 가능성에 기대에 효과를 내는 면이 있었다.

그만큼 이날 블링컨 장관의 선언은 권위주의 정권들에 좋지 않은 신호를 전파할 가능성 때문에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미국 정부는 무력을 통한 정권교체를 자제하겠다고 밝혔을 뿐 국제문제 해결을 위한 군사옵션 자체를 테이블에서 내려놓지는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국가안보전략 중간지침' 문건에서 "군대를 사용하는 것은 처음이 아닌 마지막 수단"이라면서 "외교와 경제적 수완이 외교정책을 이끌 도구가 돼야 한다"고 원칙을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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