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중수청은 힘 있는 자들에게 치외법권 제공할 것"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 설치를 통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의 완전 박탈)’이라는 여당의 입법 시도가 현실화될 경우, 무죄율이 급증해 부패범죄 대응능력이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검찰 안팎에서 확산하고 있다. 여권이 수사청을 추진하며 롤모델로 내세운 영국 중대범죄수사청(SFO)의 경우 중대범죄에 한해 수사와 공소유지 기능을 통합한 기관이라, 수사청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사청 설치 법안은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을 박탈하고, 공소제기와 유지 및 영장청구 권한만 검찰에 남겨두는 내용이다. 현재 검찰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 대한 수사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 권한을 수사청에 넘긴다는 계획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시행으로 올해부터 검찰의 직접수사 범위가 6대 범죄로 대폭 쪼그라들었지만, 여당은 이마저도 완전 없애는 입법을 추진 중인 것이다.

검찰은 국가의 부패대응능력이 약화할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먼저 수사 전문성 부족 문제다. 법안에 따르면 수사청의 수사관은 변호사 자격자나 검찰·경찰 공무원으로 조사 및 수사 업무 경험자, 대통령령이 정하는 조사업무 실무를 5년 이상 경험한 자 등으로 구성된다. 수십년간 중대 부패범죄, 기업범죄 등 수사를 진행하며 쌓은 검사들의 수사 전문성이 사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청을 통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법조계는 수사 이후 공판 단계에서의 대응 공백 문제를 더욱 크게 우려하고 있다. 현재 일반 고소·고발 사건에선 수사검사가 수사와 기소까지 하고, 이후 공소유지는 공판검사들이 맡고 있다. 하지만 권력형 비리 사건 등 중대범죄의 경우 수사검사가 공판까지 담당하는 ‘직관’을 하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과 사법농단 사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수사청이 설치되면 수사검사의 직관이 불가능해 진다. 검사는 수사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수사자료를 처음부터 검토한 후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유죄를 받아내야 한다. 한 현직 검사는 “현재 주요 사건의 경우 지방으로 발령받은 수사검사가 재판이 열리는 서울을 수차례 왕복하며 공판을 담당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사건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수사검사가 아닌 공판검사가 수사기록만 보고 재판에 임한다면 무죄율이 급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도 검찰이 직접수사한 대형사건의 경우 무죄율이 일반 형사사건에 비해 훨씬 높다. 한 검찰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사건과 법리가 복잡하고 피고인이 대형로펌의 실력 있는 변호사들을 선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며 “거꾸로 가는 개혁”이라고 밝혔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힘 있는 세력들에게 치외법권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여권이 수사청 입법을 추진하며 모델로 내세운 영국의 SFO는, 오히려 수사청 설치 반대의 근거가 된다는 지적이다. 대검 국제협력담당관실이 작성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은 일반 사건의 경우 경찰이 수사를, 검찰이 기소와 공소유지를 담당한다. 하지만 지능화되고 조직화된 범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1988년 SFO를 창설했다. 수사와 기소를 통합한 조직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쉽게 말하면, SFO는 여권이 없애려 하는 검찰 특별수사부 같은 모델”이라고 했다.

SFO의 설립 근거가 된 ‘로스킬 보고서’에는 “수사 단계에서 신문내용 구성에 개입한 사람이 기소를 담당해야, 사건 내용을 잘 알고 있어서 기소와 재판 준비 과정에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대검에 따르면 이 같은 장치를 뒀음에도 SFO의 2012~2016년 무죄율은 35%였다. 영국 전체 형사사건의 무죄율(17%, 2016년 기준)의 두배를 웃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