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저성과자 해고 '판단기준' 명시한 첫 판결

평가 공정, 재배치 등 기회 줬지만 '의지' 없다면 해고 가능
"고용 유연성 인정" vs "엄격한 요건 '해고 허들' 높아져"
저성과자 해고가 적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은 노사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은 저성과자 해고가 정당하려면 인사평가 자체가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하며 근로자의 근무 능력이 낮다는 점도 합리적으로 증명돼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동안 기업들은 저성과자에 대해 보상을 전제로 한 권고사직이나 희망퇴직 형태로 해고를 했다. 하지만 앞으로 보상보다는 저성과자 선정 기준을 객관화하는 방식으로 해고를 유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큰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분석이다.
'능력부족'도 고용유지 못하는 사유…"大法, 유연한 해고 손 들어줬다"

◆“역량·의지 부족하다면 해고 가능”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는 근로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그동안 ‘정당한 이유’를 엄격하게 제한해왔다. 근로자가 질병, 부상 등으로 일할 수 없거나 회사가 긴박한 경영상 위기로 인력을 감축해야 할 경우 등이 해당된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예외적 저성과자 해고 가능’ ‘취업규칙 변경 요건 완화’를 골자로 하는 양대 지침이 만들어졌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인 2017년 9월 양대 지침이 폐기되면서 저성과 자체를 해고 사유로 명시한 판결은 많지 않았다. 하급심에서 관련 법리가 제시되긴 했지만 상급심에서 “저성과 해고는 남용될 가능성이 커 제한돼야 한다”며 뒤집히곤 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평가, 근무 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 부여 등 ‘엄격한 요건’만 충족된다면 근로자의 능력 부족 역시 해고 사유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말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평가란 △소속 근로자들에게 인사평가 기준을 공개하고 △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제기 절차를 만들어 놓았으며 △그 평가가 복수의 인사평가권자에 의해 이뤄지는 절차를 뜻한다.

이렇게 공정한 인사평가를 거쳤는데도 ‘저성과자’로 판명 난다면 그를 해고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이 대법원 취지다. 여기서 말하는 저성과자란 객관적인 인사평가 결과가 나쁘고, 수차례 직무경고를 받는 등 장기간 실적이 부진한 자를 뜻한다. A씨 등은 직무재배치 교육을 받은 뒤에도 업무 역량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법원은 “새로운 직무에 배치된 뒤에도 부서 업무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원고들의 잘못으로 여러 차례 문제점이 발생했다”며 “원고들은 업무향상계획서 제출 역시 여러 차례 거부하는 등 업무 능력 향상에 대한 열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고들의 근무 성적 또는 능력은 현저하게 불량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고용 유연성 인정한 판결”
법조계에서는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한 가운데 저성과를 이유로 급여를 줄인다거나 자리를 옮기는 등의 사례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당장 기업 구조조정에까지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회사가 근로자에게 여러 기회를 부여하고 그 근로자가 어떤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까지 살펴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선이 없을 경우 그 근로자를 해고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라며 “회사가 얼마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해고 조치를 했는지 그 ‘허들’을 제시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간 우리 사회는 ‘능력 부족’에 관대한 경향이 있었다”며 “하지만 근로계약은 애초에 약속한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 전제돼야 유지되는 계약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용문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고용 유연성 차원에서 실무상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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