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초 장인' 이훈진, 뮤지컬 '맨오브라만차' 7번째 출연

한쪽 양말이 돌돌 말려 내려가 있고, 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양 볼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뾰로통한 표정이 귀엽기 그지없다.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는 주인공인 돈키호테 못지않게 관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돈키호테의 유쾌한 길동무이자 친구인 '산초'다.

"산초도 현실서 도피하고 싶은 인물…돈키호테 따르는 이유죠"

캐릭터 자체가 매력이 넘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 산초 역으로 가장 많이 무대에 오른 배우 이훈진은 산초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극 중 산초의 엉뚱하고 익살맞은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소화한다.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산초 장인'이라는 애칭도 생겼다.

최근 서울 송파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훈진은 웃을 때 반달 모양이 되는 선한 눈매만으로도 무대 위에서 본 산초를 실제 만난 듯한 느낌을 줬다.

그 자신도 매사에 긍정적인 모습이 산초와 많이 닮은 것 같다고 했다.

이훈진은 2007년 처음 '맨오브라만차' 무대에 선 이후 이번까지 총 7번의 시즌을 산초로 함께했다.

그가 산초라는 캐릭터를 만난 것은 국내 초연 무대에서 산초 역을 맡았던 김재만 배우 덕분이었다.

이훈진은 "함께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재만이 형이 '너 산초 해볼래'라며 추천해줬다.

형이 보기에 산초랑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고 말했다.

같은 공연에, 같은 역으로 7번째 무대에 서는 일이 지겨울 법도 하지만, 이훈진은 매 시즌이 새롭다고 했다.

그는 "처음과 지금은 많이 다르긴 하다.

처음에는 너무 떨렸고, 지금은 초연 때보다는 많이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연기해야 한다"며 웃었다.

"산초도 현실서 도피하고 싶은 인물…돈키호테 따르는 이유죠"

이훈진은 무대에서 애드리브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익숙한 무대인 만큼 배우로서 애드리브를 집어넣고 싶은 욕심도 있을 법한데 자제하는 것은 배우보다 캐릭터를 돋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대본에 충실한 이유는 전달력이 흐트러지는 게 싫기 때문"이라며 "애드리브를 많이 하게 되면 결국 관객들에게 산초가 안 보이고 배우 이훈진이 보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산초는 극에서 망상에 사로잡힌 늙은이인 돈키호테를 충직하게 보좌한다.

"좋으니까.

그냥 좋으니까.

왜 좋은지 설명이 안 돼요"라는 그의 메인 넘버 '그냥 좋으니까'의 가사처럼 맹목적으로 돈키호테를 따른다.

이훈진은 돈키호테를 따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사실 산초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하는 인물"이라고 답했다.

이어 "극에는 잘 안 나타나지만, 원작 소설에는 돈키호테한테 꼬드김을 당해 모험에 동행하고, 일만 하던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하는 내용이 나온다"며 "돈키호테처럼 현실을 아예 다르게 보지는 않지만, 현실에서 벗어나 그의 모험에 동행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산초도 현실서 도피하고 싶은 인물…돈키호테 따르는 이유죠"

아울러 이훈진은 뮤지컬에서 산초의 역할은 관객들을 가이드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산초는 풍차를 거인이라고 부르고, 여관 주인을 성주라고 여기는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돈키호테를 관객들이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산초는 돈키호테에게 계속 현실을 인지시키려고 하지만, 돈키호테가 말한 것처럼 현실이 아닌 이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겨요.

어느 한순간이 아니라 점점 그렇게 되는데, 관객들은 산초를 통해 그 이상을 보게 되죠. 산초가 돈키호테에게 동화되면서, 관객들도 작품에 동화되는 거예요.

"
이훈진에게 산초는 애착이 많이 가는 캐릭터다.

그는 "일단은 배우 생활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캐릭터"라며 장난기 어린 웃음을 보였다.

이어 "원래도 밝은 성격인데 산초를 연기하면서 더 밝아지고 즐거워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도 없다고 했다.

그는 "고민일 수도 있겠지만, 행복하게 생각할 부분도 있다"며 "비슷한 캐릭터는 제가 다 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산초도 현실서 도피하고 싶은 인물…돈키호테 따르는 이유죠"

물론 배우로서 욕심도 있다.

산초 외에도 뮤지컬 '싯다르타'의 찬나, '스팸어랏'의 베데베르, '알라딘'의 지니 역 등 감초 역할을 주로 해왔지만, 다양한 역을 소화해보고 싶다고 했다.

"배우는 다양한 역할을 해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인 것 같아요.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 하고 싶어요.

너무 잘생긴 역할은 못 하겠지만 말이죠. 배역이 있으면 마음먹고 몸을 만들어서 새로운 역도 해보고 싶고, '타짜'처럼 도박 관련 영화나 '신세계' 같은 누아르에도 출연하고 싶어요.

사이코패스나 다중인격 이런 센 역할도 재밌더라고요.

"
이훈진은 실제 활동 영역도 넓혀가고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 출연하며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고, '번개 파워 번개맨' 등 어린이 프로그램에도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그는 "공연이 됐든 TV가 됐든 연기를 하면 항상 행복하다"며 "관객이나 시청자들이 이훈진이라는 배우가 저런 연기를 했다고 알아봐 주면 감사하고, 더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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