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테일러 '독립선언서' 세계에 타전…추방 79년만에 복원
3.1운동 알린 AP 특파원 가옥 '딜쿠샤', 전시관으로 부활(종합)
1919년 3월 1일 일어난 독립만세 운동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외국인 기자가 살았던 집이 전시관으로 돌아왔다.

서울시는 미국 AP통신 임시특파원 앨버트 W. 테일러(1875∼1948)가 서울에 짓고 살았던 가옥 '딜쿠샤'(Dilkusha)의 원형을 복원해 3.1절 개방한다고 25일 밝혔다.

이날 사전 언론 공개에는 테일러의 손녀 제니퍼 테일러가 참석했다.

그는 "할아버지가 보셨으면 매우 놀라고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딜쿠샤는 외국인들이 한국인들과 함께하고 연대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기념물"이라고 말했다.

또 "딜쿠샤 개관이 한국의 독립투쟁에 동참한 서양인 독립유공자가 재조명받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앨버트 테일러는 1896년 조선에 들어온 광산 사업가였다.

AP통신 특파원으로도 활동하면서 3.1운동과 제암리 학살사건을 해외에 보도했다.

1919년 3월 1일 아내가 아들 출산을 위해 입원 중이던 세브란스 병원 외국인 병실 침상에 누군가 숨겨둔 3.1운동 독립선언서 사본을 발견, 갓 태어난 아들의 침대 밑에 숨겨 반출해 감시망을 따돌리고 타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3.1운동 알린 AP 특파원 가옥 '딜쿠샤', 전시관으로 부활(종합)
딜쿠샤는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지하 1층·지상 2층의 서양식 붉은 벽돌집으로 현재 사직터널 근처에 있다.

테일러가 한국에 거주하던 1923년 지었다.

이름은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테일러의 아내가 인도의 딜쿠샤 궁전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프랑스식 '공동벽 쌓기'라는 조적방식을 적용해 근대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는 건물이기도 하다.

딜쿠샤는 1942년 조선총독부의 외국인 추방령에 의해 테일러 부부가 강제 추방된 뒤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다.

한동안 무단점유에 의해 공동주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테일러는 추방 후 한국으로 돌아오고자 미국 정부에 요청했지만, 1948년 6월 심장마비로 숨졌다.

유해는 아내 메리가 그해 9월 입국해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치했다.

서울시는 2017년 딜쿠샤 고증 연구를 거쳐 2018년 복원 공사에 착수, 건물 정면 토지 매입비 등 총 43억원을 들여 지난해 12월 완공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소유이며 관리는 서울시가 맡는다.

딜쿠샤 내부 1·2층 거실은 테일러 부부가 거주할 때의 모습을 당시 사진 6장을 토대로 재현했다.

가구 등은 대부분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출시된 고전 제품을 구매해 배치했고, 구하지 못한 물건 일부는 제작했다.

사진 등 고증 자료가 없는 나머지 공간은 테일러 가족이 한국에서 살았던 모습과 테일러의 언론 활동 등을 조명하는 6개 전시실로 구성했다.

26일 있을 딜쿠샤 전시관 개관식에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과 제니퍼 테일러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서정협 시장 권한대행은 "딜쿠샤 복원은 근대 건축물의 복원이자 항일 민족정신의 복원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며 "역사교육의 장으로 값지게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3.1운동 알린 AP 특파원 가옥 '딜쿠샤', 전시관으로 부활(종합)
3.1운동 알린 AP 특파원 가옥 '딜쿠샤', 전시관으로 부활(종합)
3.1운동 알린 AP 특파원 가옥 '딜쿠샤', 전시관으로 부활(종합)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