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놓인 근조화환.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놓인 근조화환.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19일 사과문을 올렸지만 법조계 반응은 여전히 싸늘합니다. 사법부 안팎의 혼란도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아보입니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는 여전히 100여개가 넘는 근조화환이 늘어서 있습니다. 지난 22일 현직 판사는 김 대법원장의 사과글을 겨냥한 듯한 글을 올렸고, 신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사법 독립의 출발점은 법원 인사의 독립이고 사법부 독립은 법원 스스로 지켜야 한다"며 쓴 소리를 이어갔습니다. 취재차 만나는 법관들도 한숨부터 내쉽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과문이 법원 안팎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 대법원장의 '유체이탈식' 태도 때문입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견책이라는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를 내린 장본인입니다. 또 김명수 대법원장은 '국회 탄핵'을 이야기하며 법관의 사표를 받아들이지 않은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김명수 대법원장은 '거짓 해명'으로 요약되는 일련의 일들에 대해 '송구하다'는 원론적 입장 외 명확한 설명을 할 의무가 있는 장본인입니다.

지난 19일에 올라온 사과문, 그것도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한 사과가 아니라 현직 판사와 직원 등 법원 내부 식구들만 볼 수 있는 '코트넷'에 올라온 사과문은 사법부의 신뢰 회복에 누구보다 발 벗고 나서야 하는 장본인이 올린 사과문으로 보기엔 미흡했습니다.
다만, 해당 법관의 사직 의사 수리 여부에 대한 결정은 관련 법규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한 판단이었을 뿐,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2월 19일 코트넷(법원 내부 실명 게시판)에 올라온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과글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오늘 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지난 2월 4일 공개된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성근 부장판사 사이의 녹취록

김명수 대법원장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고 말하면서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다는 것은 이미 녹취록을 통해 드러난 사실입니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과문에서 사표를 반려한 데에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고려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과문에 나와있듯 '관련 법규정 등 여러 사정'일까요? 그 구체적인 규정과 사정은 무엇일까요?

법관징계법 7조의 4에 따르면 대법원장은 법관이 퇴직을 희망하는 경우 징계 사유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며 정직에 해당하는 징계 사유가 있는 경우 그 징계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퇴직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김명수 대법원장은 2018년 10월 '사법농단' 연루 의혹을 받는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정직이 아닌 견책의 징계를 내렸습니다. 법관징계법이 규정하는 법관에 대한 징계는 정직·감봉·견책 세 종류가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징계입니다.

임성근 부장판사의 1심 재판부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임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행위는 반헌법적인 행위라고 결론내렸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전국법관회의 역시 "임성근 부장판사의 행위는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로서 탄핵소추 대상"이라고까지 의결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견책' 이후 추가 조치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법관징계법에서 견책 처분을 받은 법관의 사표 수리를 거부하는 것과 관련된 법규정은 없습니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은 2018년 본인이 스스로 내린 견책 처분으로 인해 사표를 수리할 법적 의무가 생겼다"며 "사표 불수리처분 자체에 위법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임성근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사표수리를 거부하면 정식 소송을 진행할까도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법관징계법이 아니라면 현재 법원행정처가 검토하고 있는 '법관의 의원면직 제한 예규'를 고려한 것일까요?

예규는 말 그대로 예규입니다. 법률적 효력이 없는 행정규칙입니다. 예규 검토만으로 사표 불수리처분을 정당화할 순 없으며 법조인이 이를 모를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김명수 대법원장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임성근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걸까요? 2018년 본인이 내린 '견책' 처분에 대한 입장은 무엇일까요? 그때는 견책이고 지난해엔 사표를 반려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명수 대법원장의 글 어디를 읽어봐도 명쾌한 답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법관에 대한 사표 수리 여부는 대법원장의 재량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재량에 '정치적 계산'이 포함돼선 안 됩니다.
이에 대한 여러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저의 부주의한 답변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하여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난 2월 19일 코트넷(법원 내부 실명 게시판)에 올라온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과글

'거짓 해명' 역시 '부주의한 답변' 정도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판사들 사이에서는 '이제 위증죄로 처벌하지도 못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며 "당장 법정에서 '저도 김명수 대법원장님처럼 9개월 전의 일이 가물가물해서 그랬습니다. 송구합니다'라고 하면 재판장이 뭐라고 답해야 하나"며 쓸쓸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해당 글을 올린 '코트넷'은 법원 내부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법원 내부 실명 게시판입니다.

하지만 사법부 수장이자 대한민국 3부 요인의 '거짓 해명' 논란으로 상처받은 사람은 현직 법관뿐만이 아닙니다. 당장 해결되지 않는 분쟁을 법원으로 들고가야 하는 국민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법관에게 엉거주춤한 징계를 내린 사법부, 징계는 내렸으나 책임은 지지 않는 사법부, 공식 면담자리에서 정치적 셈법을 논하는 사법부, 현직 판사조차도 대법원장을 믿지 못해 몰래 녹음을 해야 하는 사법부, 심지어 그 녹음을 공개하게 만드는 사법부.

이런 사법부를 국민들은 어떻게 봐야 할지 의문입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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