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뮤지컬 '호프'서 에바 호프 역…"언제든 불러주면 한국 무대 오르고파"

"많이 기다렸어요.

언제쯤 한국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까 했었는데, 한국에서 작품 제안이 와서 너무 좋았죠."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 김지현이 창작 뮤지컬 '호프: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으로 8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섰다.

8년만에 한국 무대 선 김지현 "'호프', 자존감 높여준 힐링작품"

1997년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일본의 대형극단 시키(四季)에 입단해 주목을 받았던 그는 2006년 시키를 나온 후에도 일본에 거주하며 현지 무대에 주로 오르고 있다.

'호프'는 2008년 '시카고', 2012년 '넥스트 투 노멀' 이후 고국 무대에서 올리는 3번째 작품이다.

최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지현은 몇 회 남지 않은 공연을 앞두고 아쉬움 가득한 얼굴이었다.

지난해 11월 19일 개막해 오는 21일 막을 내리는 '호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중간에 두 달간 공연이 중단된 탓에 관객들을 만나는 시간이 유독 짧았다.

김지현은 "2019년 8월쯤 ('호프' 제작사) 알앤디웍스 오훈식 대표님께 연락이 왔다"며 "그때는 '호프'가 상을 휩쓸기도 전이었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너무 좋은 작품이라고 했고, 직접 보니 곡도 너무 좋고 매력적인 역할이었다"며 출연 배경을 설명했다.

김지현은 극에서 현대문학 거장의 미발표 원고를 평생 부여잡고 살아온 78세 노파 에바 호프 역을 맡았다.

그는 남루한 옷차림에 한동안 씻지 않은 듯 얼룩진 얼굴로 등장해 인터미션(휴식시간) 없는 110분의 공연 내내 무대를 떠나지 않는다.

"호프는 어렸을 때 엄마의 관심을 원고에게 뺏기고, 남자친구에게도 원고 때문에 배신당해요.

그 안에 상처가 꽉꽉 눌려있는데, 마지막에 원고를 손에서 놓는 순간이 와요.

원고로 인해서 받았던 상처가 원고로 인해 치유되면서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장면인데, 내가 누구인지, 나를 직면하게 하는 포인트죠. 이 장면이 가장 인상에 남아요.

"
8년만에 한국 무대 선 김지현 "'호프', 자존감 높여준 힐링작품"

이런 면에서 '호프'는 김지현에게 고국 무대에 대한 갈등도 씻어준 데서 나아가 배우로서 자존감을 높여준 '힐링'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20년 이상 일본에 있으면서 모국어가 아닌 일본어로 표현해야 하는 부분 때문에 진짜 나 자신을 표현하지 못한 게 많았다.

'호프'는 '이게 바로 나야'라는 극 중 대사처럼 저를 찾게 해준 작품"이라며 "단순히 한국말로 공연을 했다는 점을 떠나 내 느낌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로 인해 자존감을 높여준 작품"이라며 웃었다.

김지현은 일본에서 첫 오디션으로 1천800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고 '캣츠'의 그리자벨라 역을 따내며 단숨에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지만, 타국살이가 쉽지만은 않았다고 했다.

그만두고 싶은 위기도 있었지만 '한국인 1호'란 타이틀이 주는 사명감으로 버텨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부모님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갔고, 시키에 들어가면서 정착하게 됐어요.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하다 보니 남들보다 몇십 배 더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됐어요.

바쁘게 살았죠. 처음 2년은 '캣츠'만 했는데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어요.

그때 시키에 있던 한국 스텝이 '지현씨가 그만두면 앞으로 이 라인(한국 배우) 다 끊깁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계속 버텼죠."
8년만에 한국 무대 선 김지현 "'호프', 자존감 높여준 힐링작품"

이후 그는 시키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석배우'란 타이틀도 얻었다.

그러다 2006년 9월 시키에서 나왔다.

당시 그는 시키에서 제작한 '라이온킹'의 라이선스 공연을 올리기 위한 배우, 스텝 섭외 등의 프로젝트 전반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제작사 간 마찰이 일어나면서 시키를 떠나게 됐다고 했다.

김지현은 "그때는 공연을 올리는 게 목적이었고, 분위기상 제가 떠나는 게 원만해 보였다"며 "처음에는 배우인 내가 왜 이런 프로젝트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상황에 따라 이기적인 생각이 이타적인 생각으로 바뀌는 것 같다.

공연이 올려진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시키를 나와 홀로서기를 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 시간으로 인해 더 단단해졌다고 했다.

김지현은 "시키가 워낙 체계가 잘 되어 있어서 배우는 공연만 하면 됐었는데, 개인적으로 활동을 하려니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았다"며 "상황에 맞게 해야 할 일들의 방향을 전환해서 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지현은 앞으로 한국 무대에 더 자주 서고 싶다는 희망도 밝혔다.

"한국에 2시간 30분이면 올 수 있잖아요.

'호프'를 하면서 저도 내 나라에서 내 언어로 공연을 하러 자주 나와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어요.

불러만 주시면 언제든지 오고 싶어요.

"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