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소원 작년 3000건 넘었지만 10건 중 8건은 심사 못 받고 각하
잘못된 공권력 행사 등으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받았다며 시민들이 헌법소원을 청구한 건수가 지난해 처음으로 3000건을 돌파했다. 헌법소원이 권리 구제 수단으로 보편화하는 모양새지만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등의 이유로 헌법소원 10건 중 8건은 본안 판단을 받지 못하고 각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7일 헌법재판소(사진)에 따르면 지난해 총 3216건의 헌법소원이 청구됐다. 전년(2693건)보다 19% 늘어난 수치다. 헌재가 문을 연 1988년 총 26건의 헌법소원이 청구됐는데, 32년 만인 작년에 처음으로 3000건을 넘어섰다.

헌법소원이란 행정부나 국회, 사법부 등의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자신의 자유나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시민이 헌재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헌재가 인용 결정을 내리면 피청구인은 결정 취지에 따라 새로운 처분을 내려야 한다. 특정 법률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지 살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법조계에선 국민의 권리의식이 높아진 것이 헌법소원 급증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보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국민들이 과거엔 국가와 최대한 척을 지지 않으려 했다면 요즘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권리를 찾고 있다”며 “헌법과 기본권이 다소 쉽고 추상적인 개념이라 이 권리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진입장벽도 낮은 편”이라고 전했다.

헌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탄핵 결정을 내린 이후 대중이 헌재의 역할과 기능 등을 잘 알게 된 영향도 있다. 실제로 2016년까지 2000건을 밑돌던 헌법소원 청구건수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2017년 2589건으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헌법소원의 성공률은 높지 않다. 지난해 기준 헌법소원 사건의 78%가 각하됐다. ‘청구인 자신의 기본권이 현재, 직접적으로 침해돼야 한다’는 자기 관련성과 현재성, 직접성 등 요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각하되는 사례가 특히 많다. ‘각하’라는 1차 문턱을 통과하더라도 기각되는 경우가 상당수다. 헌재의 헌법소원 사건 인용률은 2%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헌법소원 사건이 급증하면서 헌재가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사건도 급증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헌재는 심판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이 규정을 지키지 못한 미제 사건은 지난해 8월 기준 1333건에 달한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