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문화재연구소·한국목간학회 학술회의
"명문 14자 중 판독 안된 마지막 글자는 '대형 항아리' 지칭"
"부소산성 출토 7세기 명문토기는 백제 공납제도 구체적 증거"

지난해 백제 사비도읍기(538∼660) 왕궁으로 추정되는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 북쪽 부소산성(사적 제5호) 궁녀사 구간에서 명문토기가 출토됐다.

이 토기에는 '乙巳年三月十五日牟尸山菊作'(을사년삼월십오일모시산국작)과 정확히 판독할 수 없는 마지막 글자를 더해 총 14자가 새겨져 있었다.

명문의 내용은 '을사년 3월 15일 모시산 사람 국(菊)이 만들었다'로 해석된다.

토기의 제작연대는 645년, 제작지는 예산군 덕산면(모시산)으로 추정됐다.

문제는 해독이 안 된 마지막 글자였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와 한국목간학회는 16일 오후 1시부터 연구소 회의실에서 '2020년 신출토 문자자료와 木簡(목간)'을 주제로 학술회의를 연다.

회의에서는 김대영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와 이병호 공주교대 교수, 방국화 경북대 인문학술원 HK 연구교수 등이 부소산성 출토 명문토기 등의 실체를 규명하고 역사적 의미를 살핀다.

이병호 교수는 문화재청이 미리 배포한 자료에서 부소산성 명문토기의 마지막 글자를 물장군 장(瓺) 자의 이체자(異體字, 모양이 다른 한자)로 추정했다.

토기에 새겨진 글자는 오늘날 통용되는 장(瓺)이라는 한자에서 긴 장(長) 자와 기와 와(瓦) 자가 서로 위치를 바꾼 형태다.

이 교수는 "이 글자는 일본 규슈 지역 우시쿠비(牛頸) 가마터에서 발견된 대형 토기 파편을 비롯해 일본에서 출토된 각종 목간에서도 확인되는데, 모두 '대형 저장용 항아리'를 가리킨다"며 "이에 따라 이 글자는 백제에서 대형 저장용 항아리를 뜻하는 그릇의 이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소산성 명문토기 파편의 잔존 크기는 가로 46.7㎝, 세로 43.8㎝다.

이 교수는 "이를 토대로 토기의 크기를 추정 복원해 보면 적어도 높이 90㎝ 이상의 초대형 항아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토기의 명문은 누가 새겨넣었을까.

이 교수는 명문이 토기 성형 단계에 새겨졌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불량품이 나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작 시기와 지역, 제작자, 그릇 이름을 표기한 것으로 볼 때 제작자는 그릇을 제작한 도공(陶工)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즉, 모시산 사람 국(菊)은 도공의 이름일 것으로 추정했다.

"부소산성 출토 7세기 명문토기는 백제 공납제도 구체적 증거"

이처럼 제작 시기와 제작지역, 제작자, 그릇 이름이 새겨진 토기는 일본 규슈 우시쿠비 가마터에서 발견된 대형 토기 파편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내용은 "713년(화동 6년) 가마터 주변에 거주하는 성인 남성 3명이 조(調·공납, 지방특산물을 중앙에 바치던 일)로 큰 항아리 1개를 납품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형토기를 가리키는 장(瓦+長)이 조(調)로 납품된 것을 보여주는 확실한 사례로, 그런 행정 시스템이나 용어가 백제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한편 중국 당나라 역사서인 󰡔구당서(舊唐書)󰡕 백제전에는 백제의 세제가 고구려와 같다고 되어 있고, 중국 정사 중 하나인 주서(周書)󰡕 고구려전에는 "세금은 명주·베 및 곡식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바에 따라 빈부의 차등을 헤아려 받아들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 중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바를 따랐다'는 구절은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것으로 골라서 낼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 교수는 "그간 백제를 비롯한 고대사회에서 특산물을 현물로 공납했다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적당한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번에 부소산성에서 '을사년' 명문토기가 발견됨으로써 백제에서도 지방 특산물인 토기를 현물로 공납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일본 규슈 지역에서 발견된 8세기 토기 파편과 부소산성 명문토기의 그릇 이름, 문자 기재방식 등이 매우 유사하고 부소산성 명문토기의 시대가 앞선 것으로 볼 때 일본이 백제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부소산성 출토 7세기 명문토기는 백제 공납제도 구체적 증거"

한편 부소산성 내 궁녀사 주변에서는 '을사년' 명문토기와 함께 '북사'(北舍)가 찍힌 명문토기도 발견됐다.

'북사'가 새겨진 토기는 왕궁이나 관청을 가리키는 용어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교수는 "궁녀사는 삼천궁녀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 1965년 설립된 사당인데, 이번에 발견된 명문토기들은 그 주변 지역에 백제 왕궁과 관련된 많은 물자가 유통되던 저장시설이나 관청이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회의에서 김대영 연구사는 부소산성 출토 유구 및 유물을 검토해 명문토기의 제작연대를 파악한다.

또 방국화 경북대 교수는 부소산성 명문토기의 마지막 글자를 중심으로 중국·일본의 문자 자료와 비교해 마지막 글자가 항아리를 뜻한다는 것을 밝히고, 글자와 용법이 백제에서 일본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을 살펴본다.

한편 조명일 군산대 가야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삼국∼나말여초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북 장수 침령산성 출토 유물과 백제사비기 철제 열쇠, 목간자료 등을 소개한다.

종합토론은 주보돈 경북대 교수를 좌장으로 진행된다.

학술회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공개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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