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통일 운동가 백기완 선생 영면
재야 운동권 원로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작년 1월 폐렴 증상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여야는 “한평생 이 나라 민주주의와 국민 인권을 위해 헌신했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월남한 고인은 실향민으로서 일찍이 통일 문제에 눈을 떴다고 한다. 초등교육 외 정규교육은 따로 받지 않았지만, 독학하며 학계와 두루 교류했다.

1960년 일어난 4·19혁명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964년 한·일 협정 체결 반대 운동에 재야 인사인 함석헌, 계훈제 등과 함께 참여했고, 1967년 통일문제연구소 전신 격인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했다. 1973년에는 유신헌법 개정 청원 운동을 하다가 이듬해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감된 뒤 풀려났다.

1979년 결혼식을 가장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YMCA 위장 결혼식 사건’으로 재차 체포돼 복역하다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됐다. 당시 고인 등 시위를 주도한 핵심 인사 14명은 서울 서빙고 국군보안사령부 분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고인은 2019년 11월 39년 만에 이뤄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87년 재야 운동권의 추대로 소속 정당 없이 독자 민중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위해 사퇴했다. 1992년 재차 독자 민중 후보로 대선에 출마했다. 낙선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시민사회 운동에 매진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시(原詩) ‘묏비나리’도 고인이 썼다.

평생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지만, 정작 북한 인권 문제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북한의 잇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로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나오던 2017년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도발과 망언 때문에 한반도가 전쟁 위기에 들어갔다며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 씨와 딸 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미담·현담씨, 아들 백일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7시.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