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 확산 등으로 평균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사고로 일할 능력을 잃은 사람에게 지급할 손해배상액도 낮춰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4부(부장판사 이종광)는 의료사고 피해자 A씨가 의사와 병원 측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14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왼쪽 무릎에 생긴 관절염 치료를 받다가 의료사고를 당해 발을 들 수 없는 ‘족하수’ 장애를 앓게 됐다. 이에 A씨는 병원 등을 상대로 치료비와 일실수입 등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일실수입이란 사고로 더 이상 일할 수 없게 된 근로자가 잃어버린 장래의 소득을 뜻한다.

1심은 A씨의 일실수입을 6000여만원으로 판단했다. 일실수입은 은퇴까지 남은 기간과 시간당 근로소득 등을 고려해 산출되는데, 1심 재판부는 그동안의 관례에 따라 A씨가 매월 22일씩 근로하는 상황을 가정해 일실수입을 계산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월 22일이 아닌 18일을 적용해 A씨의 일실수입을 5100여만원으로 낮췄다. 재판부는 “월간 가동 일수(근로일)가 22일이라는 기준이 처음 등장한 1990년대 후반 이후 2003년 근로기준법이 개정돼 주5일 근무로 변경되고, 2013년에는 대체공휴일이 신설되는 등 근로일이 줄고 공휴일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오늘날 경제가 선진화하고 레저산업이 발달해 근로자들도 종전처럼 일과 수입에만 매여 있지 않고 생활의 자유를 즐기는 추세”라며 “현재 추세 등을 반영하면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일용직 근로자의 월평균 근무일은 22일이 아니라 18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더라도 2009~2019년 건설업 근로자의 월 가동 일수는 18일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