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
정인이가 양부모 학대로 숨지는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지만 정작 구조된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육원 출신인 김성민 브라더스키퍼 대표(사진)가 "정인이가 구조됐어도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정인이가 양부모에게서 벗어났다면 보육원 등 아동양육보호기관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컸다.

2018년 5월 설립된 브라더스키퍼는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사회적 기업으로 안정적 일자리 및 정서적 자립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법적으로 시설 보호가 끝나는 보호종료아동이 된다. 김성민 대표가 보육원에서 퇴소한 17년 전에는 시설에서 나오는 아이들에 대한 지원금은 한 푼도 없었다.

만 18세. 아직 사회생활이 낯설 때지만 보육원에서 나와야 했던 김성민 대표는 6개월간 노숙 생활을 해야 했다. 길거리나 공원, 화장실에서 자기도 했다.

최근 들어선 달라졌다고 하지만 보호종료아동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돈은 자립정착금 500만원과 3년간 매월 30만원씩 주는 자립수당이 사실상 전부다. 이것도 2019년에서야 의무화됐다.

김성민 대표는 "이전까지는 자립정착금 지급이 '권고' 사항이었다. 국제대회가 열렸던 한 도시에서는 당시 세금 부족을 이유로 보호종료아동들에게 자립정착금을 한 푼도 주지 않았다"며 "빈털터리로 쫓겨난 아이들은 2~3평짜리 고시원을 전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인이 사건에 국민들이 공분했지만 그런 아이들이 구조돼 살아갈 보육시설 내에서의 학대 사건도 빈번하다"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어린이집 학대 사건들이 보도되는데 그 아이들은 잠깐 맡겨졌음에도 그런 피해를 당한다. 반면 24시간 맡겨지고 피해 사실을 따질 부모도 없는 아이들은 어떤 대우를 받을지 생각해보라"며 "교사 1인당 보육아동 8명을 맡도록 기준을 정해놨지만 현실적으로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난 2019년에는 보육원에서 말을 안 듣는 아이들에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약을 먹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보육원 퇴소 연령 관련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아이들은 만 18세에 퇴소하지만 민법상 미성년자에 해당돼 취업은 물론이고 휴대폰 개통 등 일상 생활에서도 하나 하나 어려움을 겪는다.

김성민 대표는 "미성년자라 일상생활을 하려면 부모 동의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이 아이들은 호적상 부모가 아예 없거나, 호적상 부모가 있어도 연락이 안 된다. 이런 기본적 문제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아이들을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때문에 이처럼 갑자기 사회로 나와야 하는 아이들은 각종 범죄에 그대로 노출된다. 형편이 어려운 여자 아이들은 성매매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

김성민 대표는 "보육원을 퇴소한 남자아이 3명과 여자아이 2명이 원룸에서 함께 살고 있더라. 이상해서 알아봤더니 남자아이 3명이 여자아이 2명을 성매매를 시키고 있었다"며 "그런데 더 안타까웠던 것은 여자아이들은 오히려 주거지를 제공해 줬다며 남자아이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안정적 주거에 대한 불안감이 높다는 방증이다.
정인양을 입양한 후 수개월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1월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양부 안모씨가 탄 차량이 나오자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정인양을 입양한 후 수개월간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1월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양부 안모씨가 탄 차량이 나오자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사진=뉴스1
보육원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정착금을 스스로 모아 나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김성민 대표는 "아이들 아르바이트를 허용하는 곳도 있지만 허용하지 않는 보육원도 있다.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생활비는 월 3만원 수준"이라고 전했다.

대학에 진학하면 보육원에 더 머무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보육원 출신 학생들에게는 B학점 이상을 유지하면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제도가 있지만 생활비는 스스로 벌어야 한다. 생활비를 버느라 학업에 집중 못해 성적이 나오지 않는 악순환에 맞닥뜨린다. 먼 지역 대학에 합격한 경우엔 자취·하숙 비용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결국 상당수는 대학을 졸업 못하고 중도 포기한다.

그는 "한 달에 4~5번 정도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한 친구들 소식을 접하게 된다"며 "퇴소한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할 전담기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성민 대표는 "아이들 자립을 위해서는 '주거'와 '일자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문제 개선을 수년 전부터 요구해왔는데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많은 분들이 이런 부분에도 계속 관심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