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조윤선 등 직권남용죄 관련 재판…백 전 장관 혐의와 같아
"직권남용 엄밀히 증명돼야" 판단기준 제시…백 영장기각 사유에 적용
'대전지법이 대법 별개 의견까지 끌어온 건 무리' 검찰 반발 분위기
'백운규 영장기각'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대법 판례 인용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 등을 받는 백운규(56) 전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유 설명에 박근혜 정부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대법원 판결문이 인용된 것으로 파악됐다.

"직권남용은 엄밀히 증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 혐의는 무죄로 봐야 한다'는 대법관 별개 의견까지 영장 기각 논리로 제시했다며 대전지법 판단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오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와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이 청구한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의 사전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 판사는 영장 기각 사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이번 사건 쟁점을 정리했다.

'백 전 장관이 직권을 남용해 한국수력원자력 및 그 관계자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고, 위 관계자들의 월성 1호기 관련 업무를 방해했다'는 검찰 주장과 '원전의 즉시 가동중단을 지시하거나 경제성 조작을 지시한 사실이 없다'는 백 전 장관 항변을 적시했다.

이어 "형법 제123조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구성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사실 및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사실이 모두 증명돼야 한다"며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피의자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보기 부족하고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백운규 영장기각'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대법 판례 인용
오 판사는 이런 법리 전개를 위해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대법원 판례를 인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지난해 1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징역 4년을, 조윤선 전 장관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전 실장과 조 전 장관 등은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을 통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와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등 소속 직원들에게 정부에 비판적인 단체·예술가 등을 정부 지원금 지급 대상에서 배제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법원은 '상급자의 직권남용 행위'와 '하급자의 의무 없는 일 수행'은 별개 구성 요건인데, 단계별로 각각 따져 두 요건 모두 충족해야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며 명확한 판단 기준을 내놨다.

'백운규 영장기각'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대법 판례 인용
당시 대법원은 김 전 실장 등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판단한 대법관 별개 의견도 공개했다.

"일부 예술인에 대한 지원 배제는 예술위·영진위 등의 심의에 따른 것"이라며 "각 법인 위원들 역할이나 심의과정을 알 수 있는 증거 없이 마치 법인 직원들이 수행한 의무 없는 일을 통해 지원배제가 됐다는 공소사실은 증명이 없다"는 게 그 요지다.

다시 말해 김 전 실장 등 피고인 직권남용 혐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백운규 전 장관 영장 기각 사유에 대법원 별개 의견까지 쓰였다며 법원 판단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기류를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 기금 배분 등을 직권으로 심의할 수 있는 예술위·영진위와는 달리 한수원 이사회는 의결만 할 수 있는 데도 법원이 블랙리스트 지원 배제와 월성원전 조기 폐쇄 결정을 유사한 잣대로 판단한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내놓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더해 유·무죄 판단에서 쓰이는 '혐의 입증 부족'이 영장 단계에서 기각 사유로 제시될 수 있느냐는 반응도 보인다.

'백운규 영장기각'에 문화계 블랙리스트 대법 판례 인용
법원 영장 기각 직후 "사유를 납득하기 어려우나, 더욱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낸 검찰은 이른바 청와대 '윗선' 수사 일정을 재조정하는 한편 백 전 장관 등 주요 피의자 보강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