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을 주도한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8일 오후 대전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을 주도한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8일 오후 대전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사진)이 구속을 피했다. 법원은 백 전 장관에게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을뿐더러 “범죄 혐의에 대한 (검찰의) 소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검찰로서는 뼈아픈 중간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검찰은 “영장 기각 사유를 납득하기 어려우나 더욱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청와대 등 윗선에 대한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法 “범죄 혐의 다툼 여지 있다”

오세용 대전지방법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새벽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오 부장판사는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범죄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이미 주요 참고인이 구속된 상태이고 관계자들의 진술이 확보돼 피의자에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백 전 장관은 월성 원전 1호기를 조기 폐쇄하기 위해 경제성 평가를 낮추는 데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산업부 공무원들이 2019년 12월 감사원 감사를 앞두고 원전 관련 자료 530개를 삭제하는 데 관여한 혐의도 받는다.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는 지난 4일 직권남용과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에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영장실질심사가 유무죄 판단을 가리는 절차는 아니지만, ‘혐의 소명 부족’이 기각 사유로 제시됐다는 것은 검찰이 핵심 증거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보완 수사를 한 뒤 백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여부를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점도 영장 기각 사유로 언급된 만큼 재청구하더라도 다시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법조계에선 백 전 장관이 이번 수사의 ‘종착지’가 아니라 청와대 등 윗선으로 향하기 위한 ‘경유지’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백 전 장관의 신병을 확보한 뒤 구속수사를 이어가며 청와대 등 윗선의 연루 의혹을 캐려던 검찰의 계획엔 일단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기소 대상이 백 전 장관과 채희봉 한국가스공사 사장(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다.

檢 “영장 기각 사유, 납득하기 어려워”

여권에선 당장 검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영장 기각을 계기로 검찰은 원전 안전 정책에 대한 정치 수사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SNS에 “국가 정책의 방향성에 옳고 그름을 따지고,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공직자는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없다”며 “검찰은 검찰의 일을, 정부는 정부의 일을 해야 한다”고 썼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전날 “정책 결정 과정까지도 검찰의 사법적인 관찰 대상으로 삼겠다는 건지, 그게 아니길 바란다”며 “그런 의심이 들 땐 저희도 좀 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검찰을 향한 정치적 압박이 심해질 것으로 보이는 만큼 관련 수사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달 차장·부장검사급 검찰 중간 간부 인사가 예정된 것도 수사 동력을 한층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번 수사를 지휘해온 이두봉 대전지검장이 최근 유임되긴 했지만, 수사 실무를 담당하는 이상현 부장검사가 전보될 경우 수사의 연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