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사건으로 본 '녹음 백태'

본인 포함한 대화 위법 아니지만
상대방 동의 구하지 않아 논란
"음성권 침해 손배 대상 될 수도"
거짓말 응징?…분쟁 대비용 '몰래 녹음' 괜찮을까

임성근 부산고등법원 부장판사가 공개한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 녹음파일이 거센 후폭풍을 일으킨 가운데 녹음 행위를 둘러싼 위법성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에게 “(사표를) 수리해 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고 말한 녹취록이 지난 4일 임 부장판사에 의해 공개됐다. 김 대법원장은 이전까지 “국회의 임 부장판사 탄핵 논의를 고려해 사표를 반려한 적이 없다”고 해명해왔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대법원장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보다 “임 부장판사가 불법 녹취해 공개한 게 더 문제”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통신비밀보호법에는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상대방 동의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대화 당사자가 녹음한 행위는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임 부장판사의 경우 ‘불법 녹음’이 아니라 ‘비밀 녹음’에 가깝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다만 대화 당사자가 ‘음성권’(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재생·공개되지 않을 권리) 침해나 개인정보 노출 등의 피해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헌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 행위로 수십~수백만원의 손해배상(위자료)을 받을 수 있다”며 “하지만 녹음자에게 비밀 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과 이익, 공익이 있었다거나 녹음을 통해 이 같은 목적이 상당한 범위에서 이뤄졌다면 손해배상이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녹음파일이 재판과 처벌의 주요 증거로 쓰인 사례는 적지 않다. 최근 광주고등법원 제주재판부는 면담을 핑계로 여제자에게 유사강간 행위를 한 전 제주대 교수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1심 판단을 유지했다. 피해자가 휴대폰으로 녹음한 파일에서 200여 차례 저항 의사를 밝히고 비명을 지른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고 최숙현 경주시청 소속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선수에게 가혹행위를 한 운동처방사가 지난달 1심에서 징역 8년형을 받았는데, 이 경우도 최 선수가 해외 전지훈련 당시 녹음한 파일이 결정적인 증거가 됐다.

법조계에선 분쟁 당사자들의 녹음 행위가 증가 추세라고 말한다. 세입자와 집주인, 영업사원과 고객 간 대화 등 일상생활에서도 상대방 동의 없이 녹음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서다. 또 다른 한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일반인 사이에서도 분쟁이 예상되는 순간부터 녹음을 당연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녹음파일은 처음부터 공개하지 않고 감춰뒀다가 상대방이 거짓말을 할 때 ‘비장의 무기’로 꺼내 상대방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는 “법정에서도 워낙 녹음파일이 증거로 많이 제출되다 보니 재판부가 증거능력(적법성)과 증거력(증거로서의 가치)은 물론 녹음자가 답변을 유도한 것인지 등을 꼼꼼하게 살펴본다”고 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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