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한 운전자, 시동 꺼트린 채 밀려 추돌사고?…대법 "운전 아냐"
만취한 운전자가 실수로 시동을 꺼트린 채 차가 뒤로 밀려 추돌사고를 냈다면 '운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9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7월 저녁 만취 상태로 차량을 조작하다가 비탈길에서 차가 뒤로 미끄러져 주차된 택시와 부딪혔다. 이 사고로 택시 기사는 전치 2주의 상해를 입었다.

앞서 약 100m 음주 운전을 한 A씨는 지인에게 운전을 맡기려고 운전석 문을 열고 내렸다. 이 때 A씨가 엑셀에서 발을 떼고 차에서 나오면서 차량의 시동이 자동으로 꺼졌다.

해당 차량은 ‘스톱앤고(Stop&Go)’라는 기능이 있다. 이는 신호대기 등 정차 시 브레이크를 밟으면 엔진 회전이 잠시 멈췄다가, 발을 떼면 다시 시동이 걸리는 기능이다. 단 운전석 안전벨트를 풀거나 운전석 문 닫힘 등의 조건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해제되면서 시동이 꺼진다.

지인 B씨는 이같은 기능에 익숙하지 않았다. 시동이 꺼진 차량은 비탈길에서 뒤로 밀리기 시작했고, 당황한 B씨 대신 A씨가 다시 운전석에 올라타 브레이크 페달을 반복 조작하는 등 차량을 앞으로 움직이려고 했지만 취한 상태에서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1심은 A씨가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차를 조작했다는 점에서 운전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별건의 음주운전 혐의와 함께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차가 뒤로 밀렸다고 해 차를 운전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A씨의 위험운전 치상 혐의는 무죄로 봤다. 이에 음주운전 혐의만 인정해 벌금을 400만원으로 낮췄다. '운전'이란 '자동차를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으로 엔진을 걸고 발진조작을 해야 한다'고 봤다. 또 변속 레버를 후진에 놓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는 점, 시동이 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브레이크 등을 조작한 점 등에 비춰 '운전이 아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이같은 항소심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