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규제 기조…내력벽 철거 연구용역 발표 차일피일 미뤄져
수직증축 추진도 잇단 고배, 과거 변창흠 장관 "수직 증축 위험"

민간 재건축 사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규제 기조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사업 추진이 쉬운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재건축과 마찬가지로 민간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규제 기조를 쉽사리 풀지 않고 있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 급증…수도권 넘어 지방 광역시로 확산
◇ 리모델링 추진 단지 수도권 넘어 지방으로 확산
10일 한국리모델링협회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아파트 단지(조합설립인가 완료 및 조합창립총회 예정 단지 포함)는 2019년 12월 말 37곳(2만3천935가구)에서 작년 12월 말 54곳(4만551가구)로 늘었다.

협회 사무처 이선향 차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울은 물론, 수원과 용인 수지 소재 아파트 단지에서도 리모델링에 큰 관심을 보였다"면서 "추진위원회 단계에 있는 단지들이 본격적인 조합을 설립할 것으로 예상되는 올해는 추진 단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리모델링은 기존 아파트를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과 달리, 골조를 유지하면서 평면을 앞뒤로 늘려 면적을 키우거나 층수를 올려 주택 수를 늘리는 방식이다.

지하 주차장을 새로 만들거나 더 넓힐 수도 있다.

아파트 재건축이 2018년 3월 안전진단 강화로 기준 연한인 준공 30년을 넘어도 통과 등급인 D(조건부 허용)나 E(불량)를 받기 어려워진 반면 리모델링은 준공 15년 이상이면 추진할 수 있고, 구조체(골조) 안전진단에서 유지·보수 등급(A∼C) 중 B 이상이면 층수를 높이는 수직 증축이, C 이상이면 수평 증축이 가능해진다.

재건축보다 인허가 기준이 까다롭지 않아 사업 추진이 비교적 쉬우며 임대주택 공급 의무가 없고, 초과 이익환수제 대상도 아니다.

백준 J&K도시정비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수도권에서 리모델링 조합이 설립된 단지만 30곳 이상"이라며 "정부의 민간 아파트 재건축 사업 규제로 2000년대 중후반 일었던 리모델링 붐이 다시 재현되는 분위기"라고 진단했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 급증…수도권 넘어 지방 광역시로 확산
서울에서는 지난해 11월 송파구 가락동 가락(1차)쌍용아파트(2천64가구)가 리모델링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데 이어, 지난달엔 성동구 금호동 금호벽산아파트(1천707가구)와 강동구 고덕동 고덕아남아파트(807가구)가 잇달아 리모델링 조합을 설립했다.

경기도 군포시는 지난달 31일 1기 신도시인 산본신도시 금정동 율곡주공3단지(2천42가구)의 리모델링 조합 설립인가를 공고했다.

특히 최근 적극적인 리모델링 추진 분위기는 수도권을 넘어 지방 광역시로 확산하고 있다.

부산시 최대 규모 아파트 단지인 남구 용호동 LG메트로시티(7천374가구)는 지난해 말 리모델링 주택조합 설립 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부산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첫 아파트 단지다.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우방청솔맨션아파트(194가구)도 리모델링 조합설립 추진위를 구성하고 지난달 협력업체 입찰 공고에 나섰다.

백준 대표는 "부산, 대구, 광주 등지에서 리모델링을 추진하려는 아파트 단지들이 최근 우후죽순 늘었다"면서 "그간 서울과 1기 신도시 위주로 추진되던 리모델링 추진 붐이 수도권을 넘어 지방 광역시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 급증…수도권 넘어 지방 광역시로 확산
◇ 수직증축 반대한 변창흠 장관…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도 변수
하지만 리모델링 사업의 핵심인 수직증축과 가구 간 내력벽 철거 허용 여부를 놓고 정부의 규제 기조가 강해 사업 추진은 난항을 겪고 있다.

정부는 2014년 4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했다.

최대 3개 층(15층 이하는 2개 층)을 더 올릴 수 있는 수직증축은 가구 수를 늘리기 쉽고, 늘어난 가구 수(종전 가구수 대비 15%)를 일반분양해 사업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한동안 재건축 대안 사업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14년부터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추진해 1차 안전진단까지 통과했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느티마을 공무원 3·4단지가 지난달 2차 안정성 검토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현재까지 수직증축 리모델링 허가를 받은 곳은 지난해 2월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서울 송파구 송파동 성지아파트가 유일하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무한건축 대표)은 "정부가 수직증축을 허용하면서 안정성 검토 제도가 도입됐는데, 검토 기간이 오래 걸리고 과정이 지나치게 엄격해 통과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수직증축을 추진하던 리모델링 단지 일부는 수평·별동 증축으로 선회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건영(240가구)은 지난달 초 조합원 총회를 열어 수평증축으로 건축 심의안을 접수하는 방안을 결의했다.

역시 수직증축을 추진하던 분당 구미동 무지개마을4단지, 분당 정자동 한솔마을5단지, 평촌 목련2단지도 수평증축 설계안으로 건축 심의를 끝마쳤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 급증…수도권 넘어 지방 광역시로 확산
특히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2013년 4월 당시 민주정책연구원(현 민주연구원)이 주최한 포럼에서 리모델링 수직 증축에 대해 "위험한 주택정책"이라며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주택가격 하락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1기 신도시는) 2기 신도시에 비해 밀도가 높아 수직증축 리모델링 시행 시 영구 음영으로 주거의 질이 악화할 수 있고, 계획도시로서의 취지가 근본적으로 훼손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리모델링 수직증축 사업이 앞으로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아울러 국토부는 리모델링 수직 증축의 사업성을 높여줄 가구 간 내력벽(건물의 하중을 견디거나 분산하도록 만든 벽) 철거 허용 여부에 대한 연구용역 발표를 계속 미루고 있다.

내력벽 철거는 재건축보다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아파트 리모델링 시장의 확대를 위한 핵심 요소다.

국내 준공 15년 이상의 중층 아파트 대부분은 벽식구조(별도의 기둥이 없는 구조)에 2베이(bay) 평면(아파트 전면에 방과 거실이 하나씩 들어간 배치)이다.

리모델링 시 가구 간 내력벽을 철거해야 옆으로 공간을 확대해 채광·통풍을 극대화한 4베이 평면(아파트 전면에 방·방·거실·방 배치)을 만들 수 있어 사업의 수익성이 개선된다.

앞서 정부는 2015년 말 수직증축 리모델링 시 아파트 가구 간 내력벽을 일부 철거하는 것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안정성 문제가 제기되자 이듬해인 2016년 8월 재검토하기로 했다.

이후 2019년 3월까지 허용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으나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연구 용역을 수행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지난해 9월 초 국토부에 검증 보고서를 제출한 상태다.

연구원은 기술적으로 내력벽 일부 철거가 가능하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장에 혼선을 주지 않기 위해 현재 실험 결과를 정리하고 있다"며 "논의가 끝나는 대로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 급증…수도권 넘어 지방 광역시로 확산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