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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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정에서의 가사노동의 가치는 여전히 낮다. 전업주부도 요리, 빨래, 청소, 장보기 등을 도맡아 바쁜 일상을 보내지만 퇴근 후 돌아온 남편은 '오늘 하루 종일 회사에서 힘들었다'고 하소연한다.

30대 여성 A 씨는 오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최근 전업주부가 됐다.

맞벌이할 때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청소나 반찬을 부탁하면 남편 B 씨는 그걸 탐탁지 않아 해서 트러블이 잦았다.

B 씨는 "당신이 회사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면 월급 받는 만큼 생활비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남편의 권유와 회사 이전 등의 일이 겹쳐 A 씨는 결국 남편이 원하는 대로 전업주부가 됐다.

A 씨 통장엔 꼬박꼬박 생활비가 입금됐다. 막상 가사를 해보니 제법 소질이 있다고 느낀 A 씨는 처음엔 재미있게 요리와 청소 등을 했다.

B 씨의 요구는 점점 늘어났다.

"속옷을 뺀 모든 옷은 다림질해 줘. 침대 시트는 호텔처럼 매일 세탁하고 아침, 저녁 국은 있어야 하고 반찬은 4가지 하되 같은 반찬은 올리지 말 것. 주방, 화장실을 포함해 매일 구석구석 쓸고 닦아야 해."

A 씨는 모든 전업주부들이 이렇게 집안일을 하는 줄 알았다. 처음엔 "회사에서 어차피 9시간 이상 근무했으니, 집안일에 9시간 소요되는 거 괜찮겠지" 싶었다.

A 씨의 아침은 6시부터 시작이다. 아침 식사용 국을 끓이고 반찬을 4가지 이상한다. 남편은 절대 냉동식품을 먹지 않기 때문에 뭐든 다 만들어야 했다.

남편이 밥 먹는 동안 출근복 다림질하고, 출근 후 그때부터 세탁기를 돌리고 집 청소를 했다.
빨래가 다 되면 새 빨래를 널고 침대 시트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하면 추운 겨울에도 땀이 비 오듯 났다.

점심 식사는 대충 아침에 먹던 것으로 먹고, 오후엔 장을 보고 저녁 메뉴를 구상하고 반찬을 만들었다. 국거리 손질까지 해 놓고 다시 청소를 한다. 특히 남편이 서재에 먼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해서 책도 다 꺼내 마른 수건으로 닦는다.

남편 퇴근 후 저녁을 하고, 설거지하고 주방 청소하면 저녁 9시가 훌쩍 넘지만 일은 끝나지 않았다. A 씨는 "하루 노동 시간이 12시간이 넘는 것 같다. 최저시급은커녕 열정페이 수준 아닌가"라고 분노했다.

하지만 B 씨는 "애도 없는데 이 정도 집안일하고 직장 다니는 것처럼 생활비 받는 전업주부가 어디 있냐"고 말했다.

가사에 대한 강요를 남편의 '갑질'이라고 생각한 A 씨는 반년간 울고 싸우고 반복하다 이혼을 생각하게 됐다. A 씨는 "남편이 이런 인간인 줄 알았다면 전업주부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사람답게 살고 싶은데 이혼이 답일까요?"라며 조언을 구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여성 1인당 가사노동 가치는 연간 1077만 원으로 남성의 3배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통계청은 2018년 "4인 가구의 가사 노동을 한 사람이 전담한다면 연간 2800만 원의 가치만큼 일을 하는 셈"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전업주부에게 생활비를 넉넉히 준다는 이유만으로 경제생활을 하는 남편의 요구를 모두 맞춰줘야 하는 것일까.

법알못(법을 알지 못하다) 자문단 이인철 변호사는 "부부는 서로 부양의무가 있다. 서로 아프면 돌보고 힘들면 위로해 주어야 힌다"면서 "부양 의무는 경제적인 부양 의무도 포함된다. 남편이 직장생활로 돈을 벌고 아내가 전업주부라면 남편은 당연히 아내에게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반대로 아내가 직장생활을 하고 남편이 가사를 한다해도 마찬가지다.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활비 지급 중단?
간혹 배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활비 지급을 중단하거나 심지어는 생활비로 사용하는 카드를 정지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생활비를 중단시키는 행위는 관계를 단절시키거나 혼인을 파탄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밖에서 일하는 남편의 고충도 이해합니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은 아주 힘들게 돈을 벌고 있습니다. 집에 있는 사람도 밖에서 일하는 사람의 노고를 충분히 이해하고 위로하고 다독여주어야 합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쥐꼬리만한 월급 갖다주면서 생색낸다’, ‘옆집 남편은 잘나가서 명품 사 주고 돈도 많이 버는데 당신은 능력이 부족하다’ 등의 막말을 하는 사람은 생활비를 요구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남편도 전업주부 아내에게 지나친 잔소리 피해야
남편도 전업주부 아내에게 집안일을 위임한 이상 지나친 간섭이나 잔소리는 피해야 합니다. 남편의 심한 잔소리는 이혼 사유가 된다는 법원 판결도 있습니다.

2011년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박종택 부장판사)는 37세 아내가 46세 남편을 상대로 한 이혼청구소송에서 ‘부부는 이혼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위자료 1천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재판부는 남편이 수시로 메모와 문자메시지로 '김치 쉬겠다. 오전에 뭐 한 건가, 주름 한 줄로 다려줄 것' 등 사사건건 지적해 아내를 불안과 긴장 속에 살게 했다면서 남편에게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아주 획기적인 판결이었죠.

이 판결 이후 실무에서 자주 이혼 사유로 ‘배우자의 잔소리’가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부부는 서로 협조의무가 있습니다. 비록 아내가 전업주부고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가사는 부부가 같이 분담해야 합니다.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준다’는 개념이 아니고 ‘집안일은 당연히 부부가 같이 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협조의무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다만 아내가 전업주부이므로 집안일은 아내가 주도적으로 하고 남편은 이에 적극 협조해야 합니다.

아내도 직장 생활 힘들게 한 남편이 정말 힘들고 피곤하면 집에서 잠시 편하게 쉬게 하는 배려심도 필요합니다. 남편을 편하게 쉬게 하고 기운을 차리게 한 다음 집안일을 시켜도 늦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간의 갈등이 심해진다면
만약 부부가 이혼할 경우 협의가 되지 않으면 부득이 이혼소송을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유책주의 제도 이혼 재판에서는 혼인 파탄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해야만 합니다. 반드시 민법 제840조의 6가지 이혼 사유를 주장, 입증해야 하므로 아내는 남편의 갑질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면서 남편을 아주 나쁜 남자로 주장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치밀히 준비하고 제출해야 합니다. 반대로 남편은 자신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아내가 아주 나쁜 악처라고 주장하면서 아내가 유책 배우자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만 아내의 청구를 기각시킬 수 있고 반소를 제기해서 위자료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심한 부작용만 만들고 결국 부질없는 싸움입니다. 어차피 이 정도까지 가는 상황이면 부부의 관계는 이미 파탄된 것이고 진흙탕 싸움을 계속 진행한다면 결국 부부 모두 상처뿐인 영광만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진흙탕 싸움을 막을 수 있는 선진국의 파탄주의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부부 중 한쪽만 억울하고 불평등한 상황이 계속 발생한다면 혼인이 파탄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 부양하고 협조해야 하며 배려해야 합니다. 남녀는 평등하고 부부도 평등해야 하므로 부부가 항상 대화하고 이해하고 서로 협조하며 서로 ‘불쌍하다’, ‘괜찮다’, ‘고맙다’, ‘사랑한다’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배려한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도움말=이인철 법무법인리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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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나/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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