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성과 리스크. 2021년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전망하면서 빠지지 않는 단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쉽사리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누적된 노동정책 리스크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노동관계법이 개정된 지난해 12월은 정점이었다. 이제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마무리 수순이다.

올해는 정치와 경제 모두 불확실성이 높다. 4월 지방선거 이후 내년 대통령 선거까지 정치권은 선거 국면으로 접어든다. 경제는 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극복되면서 다소 회복될 전망이지만 아랫목과 윗목은 확연히 구분될 거라는 예측이다. 이른바 ‘K자형’ 경기회복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12월 지역·국가별, 산업·사회계층별로 회복 성과가 차이를 보이고 격차는 더 커질 거라는 분석을 내놨다. 세계은행(World Bank)은 오늘 새벽 2021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치 3.8%를 제시하면서 ‘V자 반등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2021년 노동시장 및 노사관계 전망... 불확실성과 리스크
한국노동연구원은 고용·노동브리프 최근호에서 지난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청년, 중·고령층, 여성이 상대적으로 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중장년층에서는 실직에 이어 비경제활동인구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외환위기 때는 상용직 일자리의 감소가 컸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임시직 일자리 감소가 컸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10월까지 임시직 일자리는 전년 동기 대비 39만9000명이나 감소했고 이는 2000년 이후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전체적으로는 코로나19의 초기 충격이 밀어닥쳤던 지난해 3월에서 4월 사이 약 200만명의 일자리가 줄었다. 5월에서 8월까지 소폭 회복세를 보였지만 9월 이후 코로나19가 재확산 기미를 보이면서 노동시장 회복이 정체돼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10월까지의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론이어서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재유행 상황은 채 반영되지도 않았다. 2020년 일자리 충격의 ‘기저효과’ 때문에 올해 일자리 사정은 통계적으로는 다소 회복세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노동시장의 회복은 더딜 것으로 내다봤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은 이런 분석 결과를 내놓으며 지난해 하반기 제조업과 건설 투자가 다소 증가한 것이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됨에 따라 상용직 일자리가 본격적으로 감소하는 올해부터 고용 사정은 더욱 나빠질 거로 예상된다.
노사 간 갈등 오히려 키우는 노동법

기업 도산 등에 따른 고용조정이 불가피해 지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산업 현장 노사관계를 정부가 더욱더 위태롭게 한다고 경제단체는 지적한다. 지난 12월 9일 국회를 통과한 노동관계법 얘기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사협력본부장은 “해고자, 실업자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 조항이 삭제되면서 노조 활동과 근로시간 면제 한도 조정 등을 놓고 노사 간에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며 “사용자의 대항권에 대한 보완 없이 노동계에 치우친 법 개정으로 단체교섭 과정에서 노조 측에 힘이 쏠리게 될 것”을 우려했다.

개정 노동법에 대해서는 노동계도 여전히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해고자·실직자 가입’을 노조의 결격사유로 규정한 노조법 제2조 제4호 라목의 단서 조항만 삭제한 것에 반발한다. 해고자·실직자만 가입할 수 있게 되고 특고 종사자나 자영업자 등의 노조 가입은 여전히 제한된다는 얘기다. 양대 노총은 노조법을 다시 개정하라는 원칙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한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법률원은 노동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내놓은 해설 자료에서 “전반적으로는 현행법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평가하고 “▲단협 유효기간 연장 ▲전임자 급여 및 근로시간 면제와 관련해 ‘사측과의 힘겨루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최근 노동계가 투쟁력을 결집하는 원·하청 갈등도 더 확산할 전망이다. 원청업체를 대상으로 하청업체 노조가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사례도 지난해에 이어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 플랫폼 종사자들의 집단 갈등 사례도 증가하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 12월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올해 1분기 안으로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특별법으로 제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로 인정해 노동법을 전면 적용하라는 주장이다.

투쟁 노선을 표방하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의 새 집행부가 등장했다. 지난 12월 결선투표까지 거치면서 새로 선출된 양경수 위원장은 "11월 총파업을 조직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2018년에 이어 2019년까지 2년간 조합원 수에서 제1 노조의 지위를 민주노총에 내준 한국노동조합총연맹도 조직 확대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양대 노총 사이에 불붙은 경쟁 구도도 산업 현장 노사관계의 전망을 더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누적된 정책 리스크… 노정관계 악화 요인으로 작용
근로시간 단축이 본격화된다. 5~49인 규모의 중소기업도 7월 1일부터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기업 부담을 고려해 1년간의 계도기간이 부여될 것으로 예상된다. 50~299인 기업은 2020년 1월 1일부터 법이 적용되면서 부여된 1년간의 계도기간이 끝난다. 이제 중소기업까지 주 52시간제가 강제 적용되는 만큼 법 위반에 따른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달 노동법 개정으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6개월로 확대됐지만 이를 활용하자면 근로자 대표와 사전에 서면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을 주 52시간 한도 내에서 자유로이 선택 가능한 선택근로제도 함께 도입됐지만, 연구개발 업무 등 한정된 직종에만 활용 가능하다.

국경일, 명절 등 법정 공휴일을 민간 기업에도 적용해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는 근로기준법 규정이 30~299인 규모의 사업장에 올 1월 1일부터 적용된다.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시작돼 단계적 시행을 거쳐 내년부터는 5~29인 기업으로 확대된다. 일요일을 제외한 법정 공휴일은 연간 15일 정도다. 그만큼 인건비 부담으로 이어진다.

최저임금도 노사 간 치열한 공방 속에 정부의 선택 폭은 매우 좁을 전망이다. 현 정부 출범 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제 충격을 고려해 최근 2년간은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해 왔다.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부ㆍ여당이 노동계의 최저임금 인상 요구를 외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반면 경영계도 절박하다. 코로나19로 인한 위기 속에 생존이 위협받는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자들의 목소리도 절박하기 때문이다. 노정 간 충돌이 불가피한 사안이 곳곳에 있는 만큼 사회적대화는 파행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노사 갈등 현안 이슈된 산재 위험
산업 현장에서는 지금껏 산업안전 분야가 인사·노무관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여겨왔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노사관계 핵심 갈등 요인으로 부상했다. 노동계가 주장하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슬로건이 단적으로 말해준다. 사업의 일부를 외부 업체에 발주한 원청업체가 산재 위험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달리 말해 안전과 관련해서는 원청업체가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현 정부가 추진해 온 노동 규제의 마무리 작품이 될 전망이다. 사업주가 산재사고에 대해 형사책임까지 져야 한다는 법안에 대해서는 ‘산재 예방’보다는 ‘분풀이’를 위한 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입법에 전력을 기울이는 데다 국회 분위기도 법안 처리에 기울었다. 개별 기업은 비용 증가 이외에 산업안전 이슈를 빌미로 노동계의 직접적인 실력 행사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커졌다. 사내에서 안전관리 부서와 노무 부서가 긴밀히 협력해 컴플라이언스 이슈에 대비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노동법 전문 변호사들은 지적한다.
노동의 사법화... 기업의 법률 리스크 확대
통상임금, 불법파견, 상여금, 산재유가족 특별채용… 지난해 법원 판결로 이슈화된 사안들이다. 사법부의 판결로 개별 민간기업 근로조건이 영향을 받는 이른바 ‘노동의 사법화’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특고·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로 인정할 것인지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나 특고종사자, 자영업자에 대한 원청업체 등의 사용자성 이슈가 법원 판결을 통해 계속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 분야 준사법기관인 노동위원회도 기능 강화를 선언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지난 12월 중앙노동위원회의 ‘노동위원회 발전방안’에서다. 노동 사건의 1심 격인 노동위원회 심판 기능을 보완하기 위해 법에 규정된 부당노동행위 직권조사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앞으로 노동위원회 조사관들이 공익위원과 함께 현장 조사를 나가는 일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노위는 사내하청·특고·플랫폼 종사자 등의 집단 갈등에 조정 서비스를 본격 제공하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에 대해 원청업체의 사용자 책임을 확대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법원이 지난해 노동법원 신설을 추진하고 나선 마당에 노동위원회도 맞불을 놓는 형국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 정부 정책 리스크까지 확산하고 있어 2021년 노동시장과 노사·노정관계는 한 치 앞을 예상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