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6개월 입양아 학대 치사 혐의를 받는 모친 A씨가 지난해 11월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생후 16개월 입양아 학대 치사 혐의를 받는 모친 A씨가 지난해 11월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직 경찰입니다. 입직 9년차며 그 중 2년은 제 의지와 상관없이 쉬었습니다."

양부모에 의학 학대 끝에 사망한 정인이 사건을 지켜본 한 현직 경찰이 입을 열었다.

서울 양천경찰서가 16개월 정인이가 사망하기 전 3번의 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도 이를 무혐의 처분했다는 이유로 십자포화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다.

앞서 경찰은 "아기가 자동차에 방치돼 있다", "허벅지 안쪽에 멍이 들어있고 입이 찢어져있다", "귀가 찢어지고 피멍이 들어 있다"는 지인, 소아과 의사, 어린이집 교사의 신고를 외면하고 정인이를 모두 양부모 손에 돌려보냈다.

양천경찰서가 정인이를 살릴 수 있는 3번의 기회를 모두 날린 것과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양천경찰서장을 해임하고 담당 경찰들을 징계하라는 목소리가 뜨겁다.

하지만 현직 경찰 A 씨는 자신의 과거 사례를 구체적으로 예로 들며 경찰들의 고충을 토로했다.
"학대치사 웬 말, 살인죄로 처벌하라" 사진=연합뉴스
"학대치사 웬 말, 살인죄로 처벌하라" 사진=연합뉴스
A 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아이들을 제가 업어키워서 그런지 경찰이 되고나서 아이들한테 유독 정도 많이 갔다"면서 "3년차에 본서로 들어가서 여청에서 근무를 하게 됐고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도움도 주고 내 인생에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A 씨의 행복을 산산조각 낸 건 그날의 학대 신고였다.

A 씨는 "지구대에서 서류를 넘겨받고 확인을 꼼꼼히 하고 부모와 아이도 다 만나서 확인했다"면서 "내가 봤을 때는 명백히 학대가 맞았고 빠뜨린 부분은 없는지 선배들에게 물어가며 어렵게 부모와 아이를 분리시켰는데 그게 내가 2년을 쉬게 된 이유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온갖 쏟아지는 민원과 매일같이 사무실을 찾아오는 가해부모들과 주변인들, 직무유기와 직권남용에 분리할 때 내가 밀치면서 폭행했다고 독직폭행 등 온갖 죄목이란 죄목으로 형사 민사 고소를 다 당했다"면서 "그때 나를 감싸주는 윗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일처리 잘못해서 X된 놈이라는 인식이 순식간에 퍼졌다"고 울분을 토했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가 수사 결과를 순순히 따르지 않을거라고는 그리고 수사한 경찰을 이렇게 괴롭힐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는 것.

그러면서 "얼마 후 직위해제 당했다. 집에 있다보니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했는데 왜 쉬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고 죽고 있었다"면서 "그렇게 2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고 지긋지긋하고 피말리던 재판도 끝이 났다. 판사는 내 사건을 꼼꼼히 보고 선고유예를 받았다"고 말했다.

선고유예는 죄가 가벼운 범죄인에 대하여 형의 선고를 일정 기간 동안 미루는 일을 말한다.

A 씨는 "내부 징계로는 정직 3개월을 받았다. 내가 경찰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했다"면서 "그렇게 도합 23개월을 쉬고 복직하기 전날 다시는 수사고 뭐고 대민 상대하는 업무를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정인아 미안하다. 정인이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 또 다른 아이들아 정말 미안하다"면서 "아저씨는 더이상 용기가 안난다"고 덧붙였다.
정인이 사건 대신 사과한 현직 경찰 "학대신고 적극 대응했다가"
정인이는 지난해 10월 13일 서울 목동 한 병원 응급실에서 세번의 심정지 끝에 사망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장기는 피로 가득찬 상태였다.

부검 결과 정인이의 췌장은 충격에 의해 끊어진 상태였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양모는 "실수로 떨어뜨린 것 뿐이다"라고 학대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양모를 아동학대치사혐의로, 양부는 방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13일 첫 재판을 앞두고 검찰이 아동학대치사에서 살인죄로 공소장을 변경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의무신고자인 경찰이 그에 따르는 모든 법적 책임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정인이는 또 나올 것이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