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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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이다. 코로나19와의 싸움 속에 지새우던 한 해가 저물어간다. ‘올해의 말’은 누가 꼽아도 코로나19가 될 것 같다. 말글 관점에서 코로나19는 신조어이면서 약칭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월 11일 이 전염병의 공식 명칭을 ‘Coronavirus disease-2019’로, 약칭을 ‘COVID-19’로 발표했다.

코로나19, 한·중·일 적는 방식 달라

그것을 우리 정부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 하고, 줄여서 ‘코로나19’로 부르도록 정했다. 같은 한자어권이면서도 중국과 일본은 좀 다른 방식으로 표기한다.

중국에서는 ‘新型冠狀病毒肺炎(신형관상병독폐렴)’이라 부르고, 약칭을 ‘新冠肺炎(신관폐렴)’이라고 한다. ‘관상(冠狀)’은 왕관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붙인 코로나의 의역(意譯)이다. ‘병독(病毒)’은 말 그대로 병을 일으키는 독기라는 뜻으로 바이러스를 의역한 것이다. 거기에다 이 질병이 폐렴의 변종임을 알 수 있게 ‘폐렴’을 붙였다. 뜻글자인 한자의 장점을 살려 이름을 지었다. 언론에서는 이를 더 줄여 ‘新冠疫(신관역)’으로 쓰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新型コロナウイルス’로 쓴다. 한자와 가타카나를 사용해 옮겼다. 발음은 [고로나우이루스]쯤 된다. 바이러스를 [우이루스]라고 부르는 것은 라틴어 어원인 virus의 발음에서 따온 듯하다. 일본어 자모체계는 단순해 실제 발음을 온전히 옮기는 게 불가능하다. 가령 맥도날드 햄버거는 [마쿠도나루도 한바가](マクドナルド ハンバガ) 정도로만 옮길 수 있다.

중국 한자나 일본 가나에 비해 우리 한글은 웬만한 로마자는 실제 발음과 비슷하게 얼마든지 옮길 수 있다. 한글의 우수성이 드러나는 사례 중 하나다.

한글은 발음 그대로 옮기는 데 탁월해

우리도 예전에 한자음을 빌려 외래어를 적던 시절이 있었다. ‘텨…ㄹ썩, 텨…ㄹ썩, 텨ㄱ, 쏴…아./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者)가/지금까지 없거던, 통지하고 나서 보아라./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 …(하략).’ 너무도 유명한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한 대목이다. 1908년 11월 <소년> 창간호에 발표한 신체시다. 당시만 해도 나폴레옹을 ‘나파륜(拿破崙)’ 또는 ‘나팔륜’으로 적었다. 이른바 음역어이다. 외래어표기법이 따로 없던 시절 얘기다. 지금은 외래어 발음 그대로 한글로 적으면 그만이다.

100여 년 전에는 장질부사(腸窒扶斯)니 호열자(虎列刺)니 하는 말이 쓰였다. 지금은 사라져가는 이들은 각각 장티푸스(腸typhus), 콜레라를 음역한 말이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장티푸스는 ‘염병(染病)’으로 불려 전염병의 상징이 됐고, 콜레라는 ‘호역(虎疫)’으로도 불렸다.

중국에서 코로나19를 ‘신관역(新冠疫)’으로 부르듯이 ‘역병(疫病)’은 집단적으로 생기는 급성전염병을 이른다. ‘역(疫)’이 들어간 말은 돌림병을 뜻한다. 부수로 쓰인 병질엄()이 ‘병들어 기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 침대()에 누운 환자를 형상화했다. 그래서 이 글자가 들어간 말은 모두 질병과 관계가 있다. 홍역(紅疫)을 비롯해 두역(痘疫·천연두), 서역(鼠疫·페스트)이라고 했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전염병이나 감염병, 역병 같은 한자어도 좋지만 우리에게는 ‘돌림병’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경쟁력 있는 단어다. 누구나 알아보기 쉽고, 오래전부터 써왔기에 익숙하다. 한자어든, 외래어든 ‘언어의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게 해 살아남게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자주 써야 한다. 그게 우리말을 강하게 키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