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시행된 첫날인 2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 손님들이 붐비고 있다. 5명 이상 온 손님들도 ‘쪼개기’로 앉아 식사했다. 수도권은 이날부터, 다른 지역은 24일 0시부터 식당에서 5인 이상이 식사를 함께할 수 없다.   /양길성 기자
수도권에서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시행된 첫날인 23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 손님들이 붐비고 있다. 5명 이상 온 손님들도 ‘쪼개기’로 앉아 식사했다. 수도권은 이날부터, 다른 지역은 24일 0시부터 식당에서 5인 이상이 식사를 함께할 수 없다. /양길성 기자
23일 낮 12시 서울 여의도의 한 지하상가식당. 수도권에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조치가 내려진 첫날인 이날도 여느 때처럼 직장인으로 북적였다. “6명이면 3명씩 테이블 두 개에 나눠 앉으세요” 직장인 일행 6명이 식당에 들어가자 직원은 평소대로 이들을 안내했다. 지하상가 내 식당 32곳 중 3곳에선 아예 한 테이블에 5명이 모여 밥을 먹었다. 순댓국집 직원 윤모씨(38)는 “구청에서 지침이 없었고, 단속을 나와도 일행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처음 시행된 ‘5인 모임 금지’ 조치는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대책이었다. 대다수 식당은 구청에서 지침을 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평소처럼 5인 이상 손님을 받았다. 한 테이블에 5명 넘는 손님을 앉히는 식당도 있었다. 방역수칙을 점검해야 할 일선 구청마저 시에서 지침이 내려오지 않아 계도에 혼란을 겪었다.

‘예약 쪼개기’ 만연

점심손님 6명 들어오자…"3명씩 따로 앉으세요"
이날 한국경제신문이 여의도 광화문 강남 등 서울의 주요 업무지역 식당 25곳에 문의한 결과 21곳은 “5명이 넘어도 예약된다”고 답했다. 테이블 두 개에 나눠 앉거나 예약을 두 팀으로 하라는 답변이 대다수였다. 이른바 ‘테이블 쪼개기’와 ‘예약 쪼개기’다. 여의도의 한 한정식집 직원은 “8명이면 4명씩 테이블 두 개에 따로 앉으면 된다. 그래도 예약을 여러 건 나눠서 하는 걸 권장한다”고 했다.

방 하나에 5명 넘는 손님을 받는 곳도 있었다. 여의도의 한 일식당 주인은 “방 하나에 5명 넘게 들어가도 테이블만 띄워 앉으면 괜찮다”고 했다. 마포의 유명 냉면집은 테이블 두 개가 놓인 한 방에 각각 4명, 3명을 앉혀 총 7명의 손님을 받기도 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 같은 테이블 쪼개기와 예약 쪼개기는 모두 금지되는 행위다.

손님에게 실랑이를 당하는 식당도 있었다. 광화문의 한 식당 직원 임모씨(35)는 “한 손님이 ‘업무회의 차원에서 식당을 예약하려고 하는데 왜 안 되느냐’고 따져 난감했다”고 했다. 용산으로 출근하는 직장인 정모씨(31)는 “9명이 사무실에 모여 배달음식을 같이 먹었다”며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일부 식당은 5인 모임 금지 지침을 모르기도 했다. 삼성동에서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구청이나 시청에서 아무런 안내를 못 받아서 24일부터 적용인 줄 알았다”며 “이미 6명의 손님을 들여보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현장 단속 구청 직원도 혼란

연말연시 대목을 앞둔 식당들은 예약 취소에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 방배동에서 중식당을 운영하는 이모씨(62)는 “이번주 예정된 5~6명 소규모 예약 세 건이 전부 취소됐다”며 “미리 받아둔 40명 단체 예약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 삼성동에서 330㎡ 규모 한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메뉴 구성이 대부분 코스여서 단체 손님이 많은데, 이틀 동안 5인 단체 예약이 10건가량 취소됐다”며 “매출이 평소 대비 5분의 1로 감소할 것 같아 아르바이트생을 18명에서 10명으로 줄였다”고 했다.

자영업자들은 겹겹이 쌓인 ‘핀셋 규제’가 혼란을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당초 거리두기 방역대책을 1, 2, 3단계 세 가지로 구분했다. 그러다 8월부터 1.5단계와 2.5단계를 추가해 다섯 단계로 나눴다. 지난달 29일에는 ‘거리두기+α’ 안을 내놨다. 그러자 같은 업종, 같은 지역에서도 방역수칙이 달라 혼란을 빚었다. 이번에는 시설이 아니라 행위 규제가 내려졌다.

방역지침을 단속할 일선 구청 직원들도 혼란을 겪긴 마찬가지였다. 당초 서울시는 각 구청에 거리두기 등 방역지침을 고시한 뒤 세부 지침을 별도로 내렸다. 이번에는 그런 세부 지침이 없었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세부 지침을 받지 못해 보도자료와 언론 보도를 보고 설명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종로구청 관계자도 “현장에서 이뤄지는 쪼개기 예약을 막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했다.

양길성/김남영/최다은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