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의대 설립과 의대 정원 확대 등 정부의 보건의료정책에 반발해 의사 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에게 재시험 기회가 주어질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의료인력 공백 우려가 커지자 “구제 계획은 없다”던 정부가 입장을 바꿨다. 방역 실패로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정부가 사실상 ‘백기투항’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 총리, 국시 재시험 가능성 내비쳐

사진=뉴스1
사진=뉴스1
정세균 국무총리(사진)는 20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국시 거부 의대생 구제 방안을 묻는 질문에 “국민 여론 때문에 굉장히 신중했는데, 조만간 정부가 현실적인 여러 상황을 고려해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했다. 재시험 기회를 줄 가능성이 열려 있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볼 수도 있다”고 했다. 정 총리는 “(재시험 기회를 주는 것이) 공정한가, 절차가 정당한가 하는 여론이 있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며 “여론도 좀 바뀌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은 지난 8월 공공의대 설립 등 정부 정책에 반발해 의사 국시를 집단적으로 거부했다. 전체 대상자 3172명 중 86.0%(2726명)가 9월부터 치러진 실기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이후 의대생들은 국시에 응시하겠다고 입장을 바꿨지만, 정부는 형평성을 이유로 재시험 불가 방침을 고수해왔다.

보건복지부는 이날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인 만큼 정부가 의료인력 공백에 책임감을 갖고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구제 방안이 마련된 상황은 아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험을 보지 못한 의대생을 구제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정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윤성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원장은 “정부로부터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전해들은 바 없다”고 했다.

“정부가 책임감 갖고 해결해야”

의사 국시는 실기와 필기로 나눠 시행된다. 매년 9월 실기시험을 먼저 치르고, 이듬해 1월 필기시험을 본다. 순서와 상관없이 두 시험에 모두 합격해야 의사면허를 받을 수 있다.

다음달 7일 시행 예정인 필기시험엔 3196명이 응시 원서를 낸 상황이다. 의대 본과 4학년 응시 대상자(3172명)보다 많은 숫자다. 지난해 필기시험 불합격자의 재응시를 고려해도 대부분의 졸업 예정 의대생이 시험을 치르는 셈이다.

의료계에선 내년 초 필기시험을 보고 난 뒤 바로 실기시험을 한 차례 더 치르는 방안으로 의료인력 수급 공백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이 원장은 “실기시험은 하루 최대 100여 명만 응시할 수 있어 2700여 명에 달하는 의대생이 시험을 치르려면 최소 한 달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며 “시험 공고와 원서 접수 등 행정 절차, 설 연휴까지 고려하면 한시가 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이 문제를 가급적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종관/노경목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