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한 2020년이 저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전례 없는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 디지털 성범죄와 대규모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둘러싼 수사와 재판은 올 한 해 법조계를 뜨겁게 달궜다. ‘공정성’ ‘사법(재판)’ ‘정의’ 등의 의미를 갖는 ‘JUSTICE’를 키워드로 한 해를 정리했다. J (Jongno=대형 로펌들의 ‘종로 시대’)올해 3월 법무법인 태평양이 종로구 종각역 인근 센트로폴리스로 둥지를 옮겼다. 국내 ‘빅4’ 로펌이 모두 서울 강북 종로 일대에 모이게 됐다. 태평양의 종로행은 서소문에서 강남 테헤란로로 옮겨간 지 22년 만이다. 지난해에는 법무법인 세종이 종로3길 광화문 디타워로 이전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광화문 인근의 세양빌딩, 적선현대빌딩 등 6개 건물에 입주해 있다. 법무법인 광장은 소공동 한진빌딩에 사무실을 꾸리고 있다. 이들 로펌이 종로를 선호하는 이유는 국내 주요 대기업 및 외국계 기업의 본사와 금융회사, 정부 부처 등 핵심 고객들이 가까이 밀집해 있어서다. U (Untact=코로나19로 달라진 재판)코로나19로 법원도 ‘언택트’로 재판을 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서울고등법원, 대구고등법원 등이 ‘원격영상재판’을 시행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재판부는 법정에서, 소송대리인은 각자 사무실에서 컴퓨터 등에 설치된 웹카메라와 마이크를 이용해 비대면으로 재판에 참여한다. 지난 6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부가 사상 첫 영상 재판을 열었다. 국제 중재 부문에서도 중재인과 대리인이 한 자리에 모이는 대신, 영상으로 심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S (Supreme court=좌클릭 대법원)법조계 안팎에선 대법원의 편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한 해였다. 현재 대법원 법관 총 14명 중 11명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됐다. 그중 6명은 우리법연구회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이른바 진보적인 단체 출신이다. 올해 대법원 판결은 일부에서 ‘뒷말’을 낳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지사 선거법 사건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건이 대표적이다. 지난 7월 대법원은 ‘친형 강제 입원’과 관련해 사실을 숨긴 채 TV 토론회에서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한 이 지사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사건도 앞선 1·2심을 모두 뒤집고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T (Telegram=‘n번방’ 디지털 성범죄)조주빈 일당의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소셜미디어 등을 이용해 성착취 영상물을 만들고 유포하는 디지털 성범죄의 위험성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8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을 제작하면 최대 29년3개월까지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새 양형 기준안을 의결했다. 이전에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조차 없었다. 지난 11월 1심에서 징역 40년을 선고받은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도 이 양형 기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박사방 2인자로 불린 강훈은 최근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을 구형받았다. I (Imprisonment=MB, 징역 17년 확정)지난 10월 말 대법원은 자동차부품 회사인 다스를 실소유하면서 회사 자금을 횡령하고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을 확정했다. 2018년 5월 재판이 시작된 지 2년5개월여 만에 ‘다스는 MB 것’이라고 결론낸 것이다.이 전 대통령의 차명재산 논란 등은 2007년 한나라당(옛 국민의힘) 대선 경선 때부터 불거졌다. 2007~2008년 검찰과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거쳐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10년이 흘러 이 전 대통령 측근 및 다스 전·현직 임직원들이 증언을 바꾸면서 이 전 대통령의 수감으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 C (Conflict= 추 장관과 윤 총장의 갈등)올해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현실화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올해 1월 취임한 지 닷새 만에 검찰 내 ‘윤석열 사단’을 한직으로 발령내는 ‘숙청 인사’를 단행해 갈등을 예고했다. 7월에 ‘채널A 강요미수 의혹’ 수사에서, 10월에는 ‘라임자산운용 사태’ 수사에서 각각 윤석열 검찰총장은 손을 떼라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윤 총장이) 내 지시의 절반을 잘라 먹었다”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등 가시 돋친 장외 설전도 오갔다.추 장관이 지난 11월 말 윤 총장의 징계를 청구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윤 총장은 정직 2개월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윤 총장 측이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만큼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E (private Equity fund=사모펀드 사태)‘옵티머스자산운용’ ‘라임 펀드’ 등 사모펀드 관련 수사가 올 한 해 서초동을 뜨겁게 달궜다. 각종 펀드사기 수법이 동원돼 대량 환매중단 사태가 일어났을 뿐 아니라, 여권의 정·관계 인사가 연루됐다는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수사 규모가 확대됐다. 이달 초에는 옵티머스펀드 관련 수사를 받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이 서초동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서울남부지검이 수사 중인 라임 사태는 수감 중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검사 술접대’ ‘야권 봐주기 수사’ 의혹 등을 ‘옥중 편지’로 폭로하면서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지휘권 배제 사태를 야기하기도 했다.법조팀 종합
로펌업계에도 힘든 한 해였다. 코로나19로 연초부터 기업들의 사업 계획 및 경영 활동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에 자문과 송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펌들도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이 요구됐다. 대내외적으로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도 국내 주요 로펌은 조직의 체질 개선 및 인재 영입에 적극 나섰다.김앤장은 ‘COVID-19 법률자문팀’을 새롭게 꾸렸다. 인사·노무부터 수급 차질, 계약 취소 등 코로나 사태로 발생한 기업 피해에 전방위적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팀이다. 올해 거둔 의미 있는 판결로는 국세청이 룩셈부르크 역외펀드인 ‘시카브’ 자금을 맡은 은행들에 1600억원대 과세 처분을 내린 것을 두고 이를 취소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낸 것이 대표적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사건과 관련해선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 중단과 불기소’ 결정 등을 이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광장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수조원대 자문 건을 많이 맡았다.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분사, 한앤코의 대한항공 기내식·기내판매 사업 인수 등 자문을 수행하며 기업 인수합병(M&A) 및 구조조정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다.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 도산·회생 관련 팀을 3개로 늘리는 등 관련 업무를 대폭 강화했다.태평양은 기업공개(IPO) 부문에서 눈부신 활약을 거뒀다. 올해 하반기는 ‘공모주 열풍’이 거셌는데, 국내 증권시장에서 이목을 끈 주요 공모주 관련 자문을 대거 태평양이 맡았다. SK바이오팜 상장뿐 아니라 소마젠, 카카오게임즈, 빅히트엔터테인먼트, 교촌에프앤비 등 주요 공모주 자문을 독점했다. 6년여에 걸친 용산역세권 개발사업 관련 소송에선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을 대리해 1조원대 법인세 환급소송에서 대법 판결까지 승소를 이끌었다.율촌은 올해 인재 영입에 공을 들였다. 핀테크 업무와 관련해 쿠팡 법무부사장 출신인 이준희 변호사(사법연수원 29기)가 합류했고, 국회에서 공정거래와 독점규제 관련 법안을 구상했던 손금주 전 국민의당 국회의원(사법연수원 30기)도 다시 돌아왔다. 해외시장을 적극 개척한 것도 성과다. 올해 국민은행의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 인수, 산업은행의 인도네시아 티파파이낸스 인수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인도네시아 금융회사 M&A’ 분야에서 전문성을 높였다.세종은 팬데믹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싱크탱크를 강화했다. 지난 6월 ‘국제통상법센터’라는 부설 연구기관을 신설해 코로나 사태로 급변한 국제통상 환경 분석·대응 역량을 키웠다. ‘대한민국 1호 통상변호사’ 김두식 대표변호사를 포함해 신각수(전 주일대사), 김준동(전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고문 등 20여 명의 통상·무역·관세 전문가가 참여했다. 국내 로펌 최초로 ‘로봇’을 도입하기도 했다. 계약서 비교와 문서 처리, 사건정보 검색 등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로봇 비서가 대신 수행해준다.화우는 ‘대한항공-아시아나 인수전’의 중심에 서며 주목받았다. 산업은행의 한진칼 자본 참여부터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거래까지 한진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전반적인 법률 자문을 도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 소송에서도 한진칼의 승리를 이끌어내 아시아나 항공 인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는 게 업계 평가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대비해 허영범 전 부산경찰청장을 영입했다.지평은 부동산 실물거래 분야에서 인지도가 높은 법무법인 넥서스의 부동산금융 전문변호사 12명(이준혁 전 넥서스 대표변호사 포함)을 영입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센터, 디지털경제그룹, 그린뉴딜TF, 내부조사팀, 인권경영팀 등 신규 팀을 대거 발족했다. 기업은행의 미얀마 현지 은행 라이선스 취득 자문, 유안타증권이 주관하는 캄보디아 현지 은행(ACLEDA)의 거래소 상장 자문, 산업은행의 5300억원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자문을 맡기도 했다.바른은 예멘 광구 사업권을 둘러싼 소송에서 한국석유공사를 대리해 올해 대법원 최종 승소를 이끌어냈다. 해당 광구 운영권 일부를 매입한 현대중공업과 한화가 “한국석유공사가 최저생산량을 보장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해 손해가 발생했다”며 소송을 낸 것이다. 불확실한 자원개발 특성을 인정한 첫 판례라는 의미가 있다. 골프장 M&A시장에선 레이크힐스용인 등 6개 이상의 골프장이 바른이 주도한 인수합병을 통해 새 주인을 찾았다. 동인은 3000억원대 코카인 밀반입 혐의로 구속기소된 외국선원에 대해 무죄(대전고등법원) 판정을 이끌어 낸 점이 주목된다. 레미콘 아스콘 전문업체의 공장증설을 불허한 제천시를 대리해 승소하기도 했다. 소속 이완규 변호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대리해 총장 징계처분 취소 등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안효주/문혜정 기자 joo@hankyung.com
내년에는 검찰과 경찰의 역할이 달라지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하는 등 형사사법체계의 대전환이 일어난다. 검찰은 권한과 수사 범위가 대폭 줄어든다. 법원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를 폐지하고 법원장 추천제를 실시하는 등 ‘법관 관료화’를 방지하겠다는 기조를 이어간다.내년 1월 1일부터 수사권 조정이 시행돼 검찰이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위가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6대 범죄와 경찰공무원의 범죄로 한정된다. 3000만원 이상 뇌물수수와 5000만원 이상 알선수재 등이 부패범죄에 속한다. 경제범죄에는 5억원 이상 사기·횡령·배임 등이 포함된다. 나머지 범죄는 경찰이 수사한다.수사부터 기소까지 모든 결정을 검사가 지휘하는 현재와 달리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갖는다. 경찰이 수사 결과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고,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경찰이 무혐의라고 봤다면 자체적으로 불송치 결정을 할 수 있다.물론 불복 절차는 있다. 고소·고발인이나 피해자 등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반발해 이의신청을 하면,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다. 이외에도 검사가 경찰의 불송치 결정이 위법·부당하다고 판단하면, 1회에 한해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할 수 있다. 재수사에도 문제가 시정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검사가 사건 송치를 요구할 수 있다.공수처도 내달께 출범할 전망이다. 공수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3급 이상 공무원 등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할 수 있다. 판·검사에 대해선 기소 권한까지 가진다. 검찰 안팎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해 현직 검사들이 대거 공수처의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대법원은 내년 2월 정기인사에 맞춰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한다. 차관급인 고법부장은 법원장이나 대법관으로 가는 필수코스로 여겨져 ‘법관의 꽃’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난 3월 국회가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해당 직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일선 판사들이 법원장을 직접 뽑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도 확대 시행한다. 기존 의정부지법, 대구지법에 이어 서울회생·서울남부·서울북부·부산·광주 등 5개 지방법원까지 전국 총 7개 법원에서 법원장 추천제를 실시한다.그간 2~3년 주기로 전국 법원을 돌며 순환 근무를 하던 법관들이 한 지역에서 5년 이상 근무하는 방안도 생긴다. 선정된 장기근무 법관은 서울권 5년, 경인권 7년, 지방권 7~10년간 일하게 된다. 법관 장기근무제는 재판의 연속성 및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는데, 판사와 토착 세력과의 유착을 막을 구체적 방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향판(鄕判)’이 부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이인혁/남정민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