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경찰·국가정보원 등 3대 권력기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공수처법)과 경찰법, 국가정보원법 개정안 등 이른바 '권력기관 개혁3법' 시행을 맞아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가 결정된 이날 "검찰개혁의 소명을 완수하겠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16일 오후 3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권력기관 개혁' 합동브리핑을 열었다. 이날 브리핑은 지난 15일 공수처법과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국정원법, 그리고 국가수사본부(국수본)를 설치하는 내용의 경찰법 개정안 등이 의결되면서 마련됐다. 추미애 장관은 먼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인 법무부 장관으로서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검찰개혁의 소명을 완수하겠다"며 "국민을 바라보고 국민이 원하는 정의를 구현하는 '국민의 검찰'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국민의 검찰'을 강조한 추 장관의 발언은 이날 새벽 징계위에서 정직 2개월의 처분을 받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윤 총장은 지난달 초 신임 부장검사들을 상대로 "살아있는 권력 등의 범죄를 엄벌해 국민의 검찰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여권에선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추 장관은 그동안 법무부가 이뤄낸 검찰개혁의 성과들도 언급했다. 그는 "법무부는 수사권개혁 법령과 하위 법령 개정에 매진해 검찰개혁의 구체적 성과를 입법화했다"며 "검찰조직을 형사·공판 중심으로 개편하고, 인권보호 수사규칙 제정 등을 통해 인권 친화적 수사방식을 제도화했다"고 덧붙였다.박지원 국정원장은 "역대 정부에서 추진했지만 미완으로 남았던 국정원 개혁이 비로소 완성됐다"며 특히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5·18, 세월호, 댓글 사건, 민간인 사찰 같은 국정원 관련 의혹이 두 번 다시 거론되지 않도록 진상 규명에도 끝까지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박 원장은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부분에 대해서도 "정보 수집과 수사 분리의 대원칙을 실현해 인권 침해 소지를 없앴다"며 "국가안보 수사에 공백이 없도록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전담 조직 신설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진영 행안부 장관은 자치경찰제와 국수본 신설을 핵심으로 하는 경찰법 개정안에 대해 "'분권과 민주적 통제',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원리를 반영하고자 했던 오랜 개혁 의지의 결실"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후속 법제 정비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각 시·도와 시도경찰청별로 '자치경찰준비단'을 즉시 출범시켜 시행 준비를 착실히 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국수본의 독립성·중립성을 보장할 방안을 마련하고 권한남용·인권침해 방지책도 정착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변호사 단체 '착한 법 만드는 사람들'은 16일 설명서를 발표하고 "검찰총장 징계 의결은 무효"라며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재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이 단체는 "검찰총장 정직 2개월 징계를 의결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는 정해진 각본에 따라 정확히 연출되었다"며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되돌려 법치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대통령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단체는 "검찰총장을 징계하려면 그 사유가 중대하고 명백해 국민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징계위가 든 4개의 징계사유는 아직 의혹에 불과하고 수사가 진행 중이라 무엇 하나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검사징계법은 소추자인 법무부 장관이 심판자인 징계위원 대다수를 임명하게 돼 있다"며 "본 사안과 같이 법무부 장관이 징계청구인인 경우 위헌의 소지가 크다"고 말했다.또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청구 과정과 징계위 심의 과정에서의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며 징계 의결 무효를 주장했다.보수 성향의 교수단체인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도 이날 낸 성명서에서 문 대통령이 징계처분을 재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이 단체는 "문 대통령의 재가 조치는 검찰은 물론 사법부에도 징계라는 정치재판을 통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를 무력화할 수 있는 악한 선례를 남길 것"이라고 주장했다.정교모는 징계위 구성과 절차 진행이 심각하게 편향됐고 처분도 공정성을 잃었다며 윤 총장 징계가 일종의 '정치재판'이라고 비판했다.이 단체는 "이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법원"이라며 "법원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정직 처분에 대해 신속하게 집행정지를 내려달라"고 강조했다.조아라 기자 rrang123@hankyung.com
“관행적으로 넣었던 형사처벌 조항이 결국 검찰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얼마 전 지인인 정부 부처 전직 고위공무원 A씨의 말을 빌어 SNS에 올린 글입니다. A씨는 사무관 시절 꽤 많은 법안의 초안을 만들면서 관행적으로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식의 형사처벌 조항을 넣었다고 합니다. 지금에서보면 과태료 과징금 등 행정처분으로 처리해도 충분한 사안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의원은 “우리도 지금 그런 우(愚)를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돌아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민주당을 향해 촉구하는 듯한 말을 했습니다. 글 말미에는 “우리 사회가 점점 더 형사처벌 과잉 사회로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김주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장)는 내용을 담은 언론 기고문도 링크로 걸었습니다. 민주당은 연일 검찰 개혁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급기어는 16일 추미애 장관의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정치적 중립 훼손 등을 명목으로 정직 2개월 처분까지 내렸습니다. 민주당은 다음달에는 검찰을 견제한다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들을 줄지어 내놓고 있습니다. 기업 관련 처벌 조항이 두드러집니다. 경제계 관계자는 “검찰이 아무 기업인이라도 겨냥해 먼지털이 수사를 하면 교도소에 보내기 식은 죽 먹기인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 1년9개월 동안 50여 차례의 압수수색과 430여 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가 이뤄지면서도 정작 사건의 본류인 ‘분식회계’와는 멀어졌던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같은 사례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13일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함께 조사한 결과 21대 국회 출범 후 가결됐거나 민주당이 입법과제로 정해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되는 기업 관련 법안 25개 중 18개가 기업과 기업인 처벌 조항을 담았습니다. 이로 인해 신설된 징역형을 합산하면 62년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금융복합기업집단감독법은 금융복합기업집단 임직원이 경영개선계획 정보를 누설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형법 상 촉탁살인의 최대 형량과 같습니다. 일반 대기업 지주회사가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제한적으로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처벌 조항이 새로 들어갔습니다. CVC 투자금을 회수하는 ‘엑시트’ 단계에서 지분·채권을 총수 일가나 지주회사 체제 밖 계열사에 매각하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민주당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위헌 논란까지 일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발의한 관련 법안들은 사업주나 경영자가 안전 의무를 소홀히 해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3~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안전 의무를 다했다는 입증의 책임을 기업 등에 돌리는 조항까지 있습니다. 여권 인사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조차 “‘범죄의 입증 책임은 검사가 진다’는 형사법의 대원칙을 전환시키는 것”이라며 위헌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형사처벌 강화는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산업재해를 일으킨 기업의 처벌을 강화한 새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올해 1월부터 시행됐지만 주요 업종의 사망사고는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1~9월) 건설업 사고재해 사망자는 349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13명(3.9%) 늘었습니다. 민주당이 진정 검찰을 개혁하겠다면 애꿎은 윤 총장을 내쫓을 것이 아니라 법에 산재해 있는 불필요한 형사처벌 조항들부터 들어내야 합니다. 형사처벌 과잉사회에서 웃을 사람들은 검사와 변호사들밖에 없을 것입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