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전쟁고아 1천 명 구한 '유모차 공수작전'의 기적
1950년 12월, 북한군의 서울 재점령이 코앞에 닥치자 군인들은 대부분 서울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미국 제5공군의 군목(軍牧) 러셀 블레이즈델 중령은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봉사자 100여 명과 함께 1천 명 넘는 고아를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편을 마련해주겠다는 군 관계자의 연락을 받고 트럭 한 대에 아이들을 10여 차례씩이나 번갈아 태워 3일 만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100명도 탈 수 없는 낡고 작은 배였다.

기다리는 도중 아이 8명은 추위를 이기지 못해 독감과 백일해로 숨졌다.

절망에 빠진 블레이즈델 중령은 서울에서 우연히 만난 제5공군 작전참모 터너 로저스 대령에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전쟁고아 1천 명 구한 '유모차 공수작전'의 기적
로저스 대령은 마침 미국에서 출발해 일본 오키나와(沖繩) 기지에 도착한 C-54 수송기 16대를 있으니 이튿날 아침 8시까지 김포공항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했다.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지만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을 이동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공군 수송부에 요청했으나 보내줄 차량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또다시 좌절감에 휩싸여 있을 때 시멘트 하역 작업을 위해 미군 해병대 트럭 14대가 인천항에 나타났다.

블레이즈델 중령은 상부의 명령이라고 둘러대며 "모든 작업을 중지하고 김포공항까지 아이들을 태워 옮기라"고 지시했다.

약속 시간보다 2시간이나 늦게 김포공항에 도착했지만 다행히 수송기들은 기다리고 있었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전쟁고아 1천 명 구한 '유모차 공수작전'의 기적
1950년 12월 20일, 전쟁의 포화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고아 1천59명은 제주공항에 무사히 도착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다.

이들은 황온순 여사가 운영하는 한국보육원에 수용돼 성인으로 자라났다.

70년 전 이날의 일을 '유모차 공수작전'(The Kiddy Car Airlift)이라고 부른다.

블레이즈델 중령은 훗날 한국판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이란 별칭을 얻었다.

작전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블레이즈델 중령은 명령 불복종 혐의로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재판장이 군법을 위반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그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내 임무가 죽음에 내몰린 아이들을 죽게 놓아두는 것이라면 곧바로 전역하겠습니다.

" 재판장은 그를 처벌하지 않았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전쟁고아 1천 명 구한 '유모차 공수작전'의 기적
블레이즈델 중령은 1910년 9월 4일 미국 미네소타주 헤이필드에서 태어났다.

매칼레스터대를 졸업한 뒤 매코믹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고 목사 안수도 거쳤다.

1940년 7월 미국 육군항공대에 입대해 군목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알래스카·필리핀·오키나와 등에 주둔하며 2차대전에도 참전했다.

한국전이 발발하자 제5공군에 배속돼 대구로 파견됐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서울에 온 블레이즈델 중령은 장병들의 신앙생활을 이끄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는 데 힘썼다.

길에서 마주친 굶주린 아이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기붕 서울시장에게 부탁해 초등학교 건물을 빌린 뒤, 차를 타고 서울 거리를 돌며 고아들을 데려오자 금세 1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는 이들을 먹이고 입힐 식량과 의복을 구하느라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의 정성에 감복한 군 장병들이 월급을 쪼개 후원금을 보탰고 자원봉사자도 모여들었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전쟁고아 1천 명 구한 '유모차 공수작전'의 기적
블레이즈델 중령은 1951년 한국을 떠난 뒤 일본과 리비아에서도 근무했으며, 1964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목회 활동을 하며 1966년부터 1977년까지 뉴욕주 사회복지부 대표로 일하기도 했다.

2001년 방한해 황온순 여사와 재회하는 한편 그가 구한 고아 출신들을 만나기도 했다.

경희대는 그에게 사회복지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2007년 별세했으며 네바다주 볼더시티 재향군인 묘지에 안장됐다.

광주광역시의 보육원 충현원(忠峴院)은 2008년 그의 회고록 한국판을 펴내고 이듬해에는 동상도 세웠다.

블레이즈델 목사는 한국전 당시 이곳에서 고아들을 돌봤던 미군 참전용사 조지 드레이크 박사와의 인연으로 충현원을 알게 됐다.

충현원 건물이 낡아 아이들을 키우기 힘들다는 딱한 사연을 듣고 회고록 판권과 영화 제작권을 충현원에 기증한다고 유언했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전쟁고아 1천 명 구한 '유모차 공수작전'의 기적
'유모차 공수작전'은 할리우드 영화에도 등장했다.

록 허드슨 주연의 1957년 작 '전송가'(戰頌歌·Battle Hymn)는 딘 헤스 대령의 동명 자서전을 스크린에 옮긴 것으로 같은 해 국도극장에서도 개봉했다.

안창호 선생의 아들 필립 안은 도예가 노인으로 출연했다.

여주인공인 한국인 보모 양안순 역을 인도계 애나 카슈피가 맡았다.

헤스 대령은 영화 저작권 수익을 한국 고아들에게 기부했다.

목사 출신 파일럿인 헤스 대령은 6·25 당시 1년간 250회 출격 기록을 세워 한미 양국에서 무공훈장을 받았다.

제주도에서 한국인 전투기 조종사를 길러내는 데도 앞장서 '대한민국 공군의 양아버지'로 불린다.

헤스는 고아들을 피신시킬 방법을 알아보고 이들이 제주에 내렸을 때 임시 거처인 제주농고로 안내하는가 하면 수시로 한국보육원을 찾아 고아들을 도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러 차례 한국보육원을 방문했고 고아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전쟁고아 1천 명 구한 '유모차 공수작전'의 기적
그러나 자서전과 영화에서는 헤스 대령이 '유모차 공수작전'의 주역인 것처럼 묘사돼 논란을 빚었다.

드레이크 박사는 '사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블레이즈델 중령과 함께 고아들을 수송하느라 애쓴 마이크 스트랭 하사가 "왜 항의하지 않느냐"고 묻자 블레이즈델 중령은 "우리의 목표는 고아들을 구하는 것이었고, 그 목표를 이뤘다"면서 "어떤 일은 돈이나 명예로 따질 수 없는 보상이 따른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모차 공수작전'은 3일 뒤 미군 수송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피란민 1만4천여 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떠나 12월 25일 거제도에 도착한 '흥남 철수작전'과 함께 한국전쟁의 양대 크리스마스 기적으로 꼽힌다.

국가보훈처는 2020년 1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을 선정했다.

며칠 뒤면 바닷길과 하늘길에서 두 기적이 일어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한국인에게 두고두고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준 블레이즈델 중령과 라루 선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