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북한 방송을 시청한 뒤 김일성을 향해 "잘생겼다"고 말한 혐의로 1979년 유죄 판결을 받은 95세 여성에게 법원이 40여년 만에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2부(부장판사 이관용)는 반공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95)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1978년 6월3일 지인의 집에서 '김일성이 살던 초가집' 등 북한 방송을 본 후 지인 B씨에게 "김일성은 늙은 줄 알았더니 잘 먹어서 그런지 몸이 뚱뚱하게 살이 찌고 젊어서 40대 같이 보이는데 잘생겼더라"며 "이북에는 고층빌딩이 여기저기 있고, 도로도 잘되어 있더라"고 말을 한 혐의를 받는다.

이후 A씨는 시누이의 남편 C씨에게 자신의 집 텔레비젼에도 북한 방송이 나오는지 보자고 하는 등 북한의 선전활동에 나선 혐의도 받는다.

A씨는 같은 해 9월 반공법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이듬해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 및 자격정지 1년을 확정받았다.

A씨는 40여년이 지난 올해 5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로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A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공소사실과 같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며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원심은 A씨의 진술과 증인들의 진술을 근거로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했다"며 "그런데 주변인의 진술에 따르면 A씨가 평소 북한에 대해 언급한 바 없고, 동네 사람들이 저녁 시간에 모여 TV 채널을 돌려보다가 우연히 북한 방송이 나온 뒤 공소사실과 같은 말을 했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A씨가 1978년 당시 경찰에 체포된 후 열흘가량 불법 구금된 사실을 언급하며 "이 같은 점을 비춰볼 때 A씨가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의 임의성을 의심할 사정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신현아 한경닷컴 기자 sha01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