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위한 의료 인프라 '미흡'
"여성주의적 관점이 있는 의료기관 필요"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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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로 성폭력 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성폭력 피해자의 사후 보호·지원 인프라는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폭력 전담의료기관은 5년 사이 10%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11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성폭력 전담의료기관은 2015년 1월 349개소에서 2020년 1월 316개소로 33개소(9.46%)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성폭력 피해자 전담의료기관은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2002년 도입된 것으로, 전담의료기관 지정을 원하는 병원이 신청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심사해 지정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전담의료기관에서 의료비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전담의료기관이 이렇게 줄어드는 이유는 별도의 수익이 나지 않는 데다 낙태죄에 연루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의료계의 설명이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전담의료기관에 대한 별도의 재정적, 정책적 지원은 없다”며 “대신 종합병원과 연계되는 해바라기센터 등 저희가 관할하는 기관이 늘어나는 면도 있으니 감안해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바라기센터는 2015년 36개소에서 2020년 39개소로 3개소 증가에 그쳤다.

일각에서는 의료인의 무지로 일어나는 2차 가해나 종교적 문제로 사실상 성폭력 전담의료기관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성폭력 전담의료기관이라 안내되고 있는 가톨릭 계열의 한 의료기관은 사후피임약을 처방하지 않고 있었다. 의료계에서는 강간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사후피임약의 빠른 처방은 피해 여성들에게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여가부가 운영하는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의료 지원을 제공하지만, 성폭력 피해에 대한 증거 채취와 이에 따른 의료지원은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해야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성폭력 신고를 결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아 ‘문턱’이 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고를 원치 않을 때는 민간 여성단체를 통해 상담을 받고, 상담사실확인서를 발급받아 구청 등 지자체에 직접 가서 접수해야만 의료지원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 인프라의 양뿐만 아니라 질도 개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한국 사회에서는 의료 과정에서도 ‘가해자와 연애한 것 아니냐’는 2차 가해가 이뤄지는 경우가 빈번하다”며 “피해자들을 여성주의적 관점이 있는 의료기관에 연결하다보니 지나치게 치료가 지연된다거나 적절한 치료 타이밍을 놓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자의 보호를 위한 의료 인프라를 양적, 질적으로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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