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는 남편, 주방은 여성 공간?…주부도 자기 책상 가져야
편리함 보다 편안함을 주는 집에 살고싶어

'친애하는 나의집에게' 하재영 작가 인터뷰
"나에게 집은 무엇일까" '인터뷰 집'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투자 가치를 가지는 상품, 내가 살아가는 공간. 그 사이 어디쯤에서 헤매고 있을 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오를만한 아파트를 사는 것이 나쁜 건 아닙니다. 그것으로 돈을 버는 것도 죄악은 아니겠죠. 하지만 누구나 추구해야하는 절대선도 아닐 겁니다.

기사를 통해 어떤 정답을 제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누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생각도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통해 각자가 원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나누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집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인터뷰는 나이, 직업, 학력, 지역 등에서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합니다.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시고 싶은 분, 내 주변에 사람을 추천해주시고 싶으시다면 이메일로 연락주세요. 직접 찾아가 만나겠습니다.
최근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는 책을 낸 하재영 작가는 신중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집에 대해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가 되거나 오만으로 비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자신의 집에 대한 생각이 수많은 이사를 통해 만들어졌듯 타인 역시 그 나름의 역사가 있을테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 생각만 맞다고 주장하고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같은 때에 보기 드문 배려심이었다.

그는 아파트 보다는 빌라, 역세권 보다는 조용한 동네가 좋다고 했다. 이런 집을 선호하게 된 것은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빌라에서 보낸 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게 하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의도하지 않아도 기억이 연속성을 가지듯, 집에서도 과거의 연속성이 드러날 수 밖에 없다"며 "집은 한 사람의 생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보다 옛 정취 남은 빌라가 좋다"[강영연의 인터뷰 집]

오래된 동네에서 편안함 느껴
11일 서울 구기동 하 작가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하 작가는 그의 집과 닮아 있었다. 그의 집은 서울 구기동에 있는 1990년대 후반에 지어진 빌라다. 그 안은 편안함을 주는 원목가구와 소품들로 채워져있었다. 불필요한 물건들은 없었고 깔끔했다. 수십번의 이사 끝에 찾아내 스스로 만들어낸 꼭 맞는 집이었다.

이번 집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동네였다. 역세권 처럼 번화하고 번잡한 곳은 싫다고 했다. 대신 편의시설이나 유동인구가 많지 않아 조용한 곳이 좋다고 했다. 하 작가는 "신혼집인 경기 고양시에서 서울로 이사를 오기로 결정하고 집보다 동네를 먼저 선택했다"며 "구기동, 평창동, 부암동 등을 둘러봤는데 조금만 걸으면 숲 길이 있고, 개발이 안돼 옛날 정취가 남아있다는 것이 맘에 들었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이런 동네에 살았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인 대구에서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을 때는 저렴한 원룸을 찾아 이 동네 저동네를 떠돌았다. 그는 "하루 한번 이상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하는 곳들이었다"고 회상했다. "사람들이 대체로 여유가 없었고 주변 환경도 사람들을 점점 더 그렇게 만드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웃들을 좋아할 순 없었지만 미워할 수도 없어 슬펐죠. 늘 그곳을 떠나고 싶었어요."

지금 사는 동네는 다르다. 토박이들이 많고 안전하고 정겨운 풍경도 남아있는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반려견 호동이와 산책할 수 있는 숲길이 가까운 것도 장점이다. "이 동네에는 40년 넘은 슈퍼마켓이 있고, 조금 걸어서 부암동에 가면 1970년대부터 하던 방앗간도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뭉클하달까. 동네가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아파트보다 옛 정취 남은 빌라가 좋다"[강영연의 인터뷰 집]

빌라나 주택에 살면 불편하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는 '편리함은 내게 큰 가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역세권이 아닌 것도,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어려운 것도 그다지 불편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편리함을 느껴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힘들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하 작가는 "편리함과 불편함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부모님은 지금 전원주택에 사신다"며 "잡초를 뽑고 집을 가꾸지만 그것을 불편함이라고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약간의 불편함은 필요하다는 생각도 있다. "작가는 편한 의자가 아니라 딱딱한 의자를 사용해야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래야 긴장해서 글이 써진다고요. 약간의 불편함은 긴장감을 가져오고 그것이 집중하기에는 더 좋은 거 같아요."

집이 주는 편리함 보다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SNS에서 유명한 예쁜 카페, 풍경이 좋은 식당 등을 찾아간다. 오랜 시간 기다렸다 들어가는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좋은 공간을 즐기기 위해서 그만큼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다. 그는 찾아가는 곳처럼 집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하 작가는 "카페를 가도 커피만 마시는게 아니라 좋은 장소에 가서 그곳을 즐기려 한다"며 "집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고 그를 위한 일들을 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아파트가 아닌 빌라를 선호하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가족의 첫째로 태어나서 조부모와 부모님에게 가장 사랑 받던 시절. 그리고 아버지 사업이 잘 돼서 가장 좋은 집에 살았던 시절이 빌라에 살던 때라고 했다.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들은 제가 빌라에서 느끼는 향수를 아파트에서 느끼더라고요. 살아온 기억을 갖는다는 점에서 집은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아파트보다 옛 정취 남은 빌라가 좋다"[강영연의 인터뷰 집]

집으로 투자하거나 돈을 벌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를 '물정에 어두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하 작가는 "따지거나 계산을 잘못한다"며 "이 집이 오를까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살고 싶은 곳을 사게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집을 살 때는 되도록 수리가 안 된 집을 골랐다. 자기가 원하는 공간으로 싹 바꿀 생각에 되도록 손이 타지 않은 집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 집일 수록 가격이 싼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품위있는 물건들로 집안을 꾸미려 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사용한 것은 나무다. 바닥, 주요 가구, 문 등을 모두 직접 제작 했다. 조명은 1950~60년대에 생산된 빈티지 제품을 달았다. 그는 "나무 소재는 시간이 지나 낡아도 초라해지지 않는 것 같다"며 "지금 봤을때 촌스럽지 않고, 오래된 것들은 앞으로도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고 설명했다.
여성들도 자기만의 책상 가지길
그는 집 만큼이나 그 안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 여성들에게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를 권했다. 인테리어 블로그 등을 보면 서재는 남편, 주방을 여성의 공간으로 소개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하 작가는 "주방은 가족 전부의 공간이자 여성 주부들에겐 노동의 공간"이라며 "여성들이 그 공간이 내 것이라고 내면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정말 쉴 수 있는 공간을 가져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내가 슬프고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그 조차 남에게 노출해야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며 "나의 눈물을 감출 수 있는 공간, 정말 혼자 있어야 할 때 그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작은 책상 하나라도 갖게 되면 그 공간만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고 덧붙였다.

기회가 된다면 오래된 단독 주택을 사서, 원형을 살리면서 고치고 싶다고 했다. "오래된 주택 중에 집 안이 모두 나무로 된 집을 사고 싶어요. 아마 요즘엔 찾기 힘들겠지만요. 벽도 계단도 다 나무인 그런 집이 저에겐 향수에요."

집에 꼭 갖추고 싶은 것은 책상. 식탁, 스피커다. 그는 "책상은 글을 쓰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곳, 식탁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공간이라 무척 중요하다"며 "좋은 음악을 들으면 삶의 질이 올라가는 기분이라 행복하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