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공동체, 무료 급식소, 노숙인쉼터, 의료복지 협동조합 등 정착 앞장
"내 소명은 봉사자…마지막 날 누구에게 고마웠다고 말할 사람 있을까"
[#나눔동행] 낮은 곳에서의 30년 섬김…'원주의 슈바이처' 곽병은 원장

"늘 남을 돕고 살아야 한다.

착한 사람이 돼야 한단다.

커서 신부님이 되렴."
할머니는 손자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손자는 항상 듣는 얘기라도 싫지 않았다.

할머니는 손자의 손을 잡고 늘 성당에 가서 그 당부를 삶으로 다시 보여줬기 때문이다.

꼬마의 아버지는 의사였다.

아버지는 달동네에 병원을 차리고 가난한 이들에게 인술을 펼쳤다.

꼬마는 진로를 정할 만큼 훌쩍 자랐다.

신부가 되긴 싫었지만, 할머니와 아버지처럼 남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

의사가 되기로 정했다.

힘든 길이라며 아버지가 말려도 결국 의사 가운을 입었다.

31살 청년은 1984년 국군 원주병원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군의관 생활 3년 동안 주변을 살펴보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원주의 슈바이처' 곽병은(67) 밝음의원 원장과 강원도의 인연은 이때부터 시작했다.

[#나눔동행] 낮은 곳에서의 30년 섬김…'원주의 슈바이처' 곽병은 원장

곽 원장은 의대 출신인 아내와 함께 1989년 원주 중앙동에 병원을 열고 지역 재소자와 집창촌 여성 등의 건강과 삶을 함께 돌봤다.

구석구석 돌아보니 안타까운 사연이 너무 많았다.

특히 한 가족이라도 장애인, 노숙인, 결손아동 시설로 흩어져야 하는 모습에 마음 아팠다.

곽 원장은 1991년 흥업면 대안리에 가정 공동체인 '갈거리 사랑촌'을 세우고 봉사의 삶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칡이 많아 이름 붙여진 대안리의 옛 지명인 갈거(葛巨)리를 사용했다.

이 동네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뜻을 함께 담았다.

어려움, 아픔을 가진 가족들이 여기 한데 모여 살게 됐다.

이전에는 남이었어도 사랑촌에서는 가족이 됐다.

구성원이 20명 가까이 늘어났고, 이들은 농사, 축산업 등을 일구며 자립을 위한 땀방울을 흘렸다.

쌀, 채소, 반찬 등 먹거리 후원도 넉넉했다.

그때 사랑촌 가족 중 한 명이 "시내에는 밥 굶는 사람이 많다"고 얘기했다.

곽 원장은 1997년 병원 인근에 무료 급식소를 차렸다.

원주 최초 무료 급식소 '십시일반'의 시작이었다.

식사를 마친 노숙인들은 모금함에 100원 한 푼이라도 넣고 문밖을 나섰다.

한 해 동안 모인 동전은 300만원이 넘었다.

이는 지역 불우아동을 돕는 '갈거리 장학회' 기금으로 변했다.

[#나눔동행] 낮은 곳에서의 30년 섬김…'원주의 슈바이처' 곽병은 원장

추운 겨울 따뜻한 밥이 필요한 이들은 급식소 앞에 종이상자를 깔고 잠을 청했다.

곽 원장은 원주역 앞 견인 차량 보관소에 컨테이너를 2개 놓고 이들을 쉬게 했다.

'원주 노숙인 쉼터'는 1998년 겨울 이렇게 시작됐다.

곽 원장은 이렇듯 주위 필요에 따라 나눔의 지평을 넓혔다.

착한 '문어발식' 확장이었다.

개울 너머 할머니들은 차비가 없어 아픈 허리, 무릎에도 왕복 2시간을 걸어서 병원으로 왔다.

이에 1999년 가난한 홀몸노인에게 방을 내주는 '봉산동 할머니의 집'을 세웠다.

노숙인들은 스스로 삶을 일으키려 했으나 종잣돈이 부족했다.

곽 원장은 '갈거리 협동조합'을 만들고 노숙인들에게 200만원 한도 내 무담보 신용대출을 시작했다.

첫해 회수율은 95%에 달했다.

조합원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말했다.

[#나눔동행] 낮은 곳에서의 30년 섬김…'원주의 슈바이처' 곽병은 원장

곽 원장은 밖을 향해 넉넉했지만, 스스로에게는 엄격했다.

본인이 없어도 봉사는 이어져야 하기에, 또 스스로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에 시설과 용지 등을 가톨릭 교구에 기증하고 자신은 운영에만 전념했다.

평생 나눔의 삶을 꿈꿨던 곽 원장은 봉사보다는 운영에 매달리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결단을 내렸다.

2015년부터 많은 직과 재산을 내어준 뒤 오롯이 봉사자로 살고 있다.

곽 원장은 "많은 시설을 운영할수록 봉사자들이 부러워졌다"며 "내가 섬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몇 년 전부터 호스피스 병동을 찾아 환자들 팔다리를 주무르며 말동무를 하다가 지금은 몸이 안 좋아져 잠시 쉬고 있다"고 밝혔다.

대를 이은 봉사의 삶을 따라 30년 동안 원주와 인연을 맺으며 더 낮은 곳으로 스며든 곽 원장.
그는 최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발간한 시집 중 한 구절을 소개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에게 마지막 날에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일까.

그 삶은 작지만 위대하진 않을까.

그리고 나는 내 마지막 날에 누구에게 고마웠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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