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29일 폐회하는 19기 5차 전체회의(19기 5중 전회)에서 2021~2025년 적용될 14차 5개년 경제계획(14·5계획)을 확정한다. 14·5계획의 핵심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의 전환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5세대(5G) 통신 등 ‘신(新)인프라’에 대대적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AI는 그중에서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핵심 관심사로 꼽힌다.
14억 인구 빅데이터가 무기…중국, 세계 'AI 패권' 노린다

AI 활용한 스마트시티 500개 구축

2017년 12월 31일 시 주석이 2018년 신년사를 발표하던 당시 국내외 매체들은 그의 집무실 책장에 꽂혀 있는 두 권의 책에 주목했다. 페드로 도밍고스의 《더 마스터 알고리즘》과 브렛 킹의 《증강현실》이었다. 모두 AI 관련 서적이다. 독서광으로 알려진 시 주석은 서가에 이념·정치·군사 관련 책들을 주로 놓아두고 있다. 여기에 이 두 권이 있다는 사실은 그가 AI에 얼마나 깊은 관심이 있는지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더 마스터 알고리즘》은 AI의 기반 기술인 ‘머신러닝’이 인간의 일상생활과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다룬다. 《증강현실》은 AI와 증강현실 등의 기술이 바꿔 놓을 인류의 미래를 그린 책이다.

시 주석은 최근 경제 관련 연설마다 AI를 강조했다. 14억 명의 인구에서 창출되는 데이터와 내수 시장 잠재력을 AI 기술 개발의 저변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은 2017년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계획’을 내놓고 체계적인 AI 기술 개발을 추진해왔다. 2020년까지 AI를 경제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2025년까지는 제조업, 의료, 농업 등으로 AI 활용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2030년에는 세계 AI 혁신의 중심이 된다는 방침이다. 연관산업 규모 목표는 2020년 1조위안(약 170조원), 2025년 5조위안, 2030년 10조위안으로 책정했다.

중국은 지난 5월 양회(兩會)에서 AI 등 핵심 기술 분야에 2025년까지 10조위안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통과시켰다. 지방 정부들과 화웨이, 알리바바, 텐센트, 디지털차이나, 센스타임 등 중국 대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협업해 AI 소프트웨어 등을 집중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수도인 베이징에는 1조3000억위안을 들인 60만㎡ 규모 AI 연구단지가 조성되고 있다. 중국 전역에는 500개의 ‘스마트시티’를 조성 중이다. 교통·수도·전력·치안 등 도시 인프라에 AI 기술을 적용해 편리하고 안전한 생활 공간을 구축한다는 목표다.

논문 양에선 이미 세계 1위

중국의 AI 전략의 성과는 숫자로 확인된다. 미국의 앨런AI연구소가 올 4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AI 관련 논문 가운데 정상급인 ‘인용횟수 상위 10%’ 논문의 점유율에서 중국은 26%로 1위 미국(29%)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질적인 수준이 크게 올라갔다는 의미다.

양적 지표인 논문의 양에선 이미 중국이 세계 1위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차세대 인공지능 발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세계에서 발표된 AI 관련 논문은 총 30만5000여 편이며, 이 가운데 중국은 7만4000여 편으로 선두에 올랐다. 또 2018년 말 기준 세계 AI 관련 기업 1만5916곳 가운데 중국 기업은 3341곳으로 미국에 이어 2위다. 중국의 AI 기업은 2016년 말 1000곳 남짓에서 불과 2년 만에 세 배 넘게 불어났다.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AI 스타트업에 투자된 자금은 266억달러(약 30조원)로 2018년 대비 20.4% 급증했다. 이 가운데 중국 기업들에 유입된 자금은 29억달러로 11%를 차지했다. 이 역시 미국(170억달러)에 이어 2위다.

짧은 동영상 공유 플랫폼인 ‘틱톡’을 개발한 바이트댄스는 중국 AI 기업들 가운데서도 성공작으로 꼽힌다. 틱톡이 세계 소비자를 빠르게 공략할 수 있었던 이유로 꼽히는 추천 기능의 기반이 AI 기술이다. 중국은 미국의 틱톡 제재에 맞서 AI 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바이트댄스는 누적 투자 유치 금액이 31억달러를 넘었으며, 기업가치는 1400억달러로 평가받고 있다.

방대한 데이터가 기반

중국에선 휴대폰을 개설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가 있다. 6초간 찍은 안면 인식 동영상을 내야 하는 것이다. 출입국 심사를 받을 때에도 얼굴 사진을 찍는다. 공유 자전거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본인 인증을 할 때는 신분증을 들고 찍은 셀카를 내야 한다. 선전, 광저우 등 일부 도시에선 지하철을 탈 때도 교통카드 대신 안면 인식으로 요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수집한 방대한 데이터는 중국이 AI 가운데서도 안면 인식 부문에서 세계 최고로 떠오를 수 있었던 배경이 됐다. 시민을 통제하기 위해 축적한 데이터가 역설적으로 AI 기술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폐쇄회로TV(CCTV)로 출발한 하이크비전, 더화테크놀로지 등은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춘 안면인식 보안업체로 꼽힌다. 미국은 이 기업들이 신장 위구르족 인권 탄압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일각에선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AI 기술 발전을 견제하기 위한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구글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에릭 슈밋 미국 AI국가안보위원회 의장은 지난 15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의 화상 포럼에 참석해 “AI 분야에서 협력도 중요하지만 중국은 이미 함께하기엔 너무 커졌다”며 중국을 꺾어야 할 대상으로 지목했다.

베이징=강현우 특파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