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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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분위기를 봤을 때 한국도 탄소제로 선언을 신속 결정해야 한다." 지난 25일 당정청 '한국판 뉴딜' 워크숍을 마친 뒤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국난극복k뉴딜위원회 정책기획단장이 한 말이다. 탄소제로 선언이 무엇이길래 한국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일까.

중국도 '넷제로' 선언

탄소제로는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을 더했을 때 온실가스 순 배출량이 0인 상태를 의미한다. 탄소제로 선언은 특정 시점까지 탄소제로를 만들겠다는 국가적 선언이다. '넷제로(Net Zero) 선언' '탄소중립 선언'이라고도 한다.

많은 나라들이 이미 2050년까지 탄소제로를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기후위기 대응에 앞장서는 유럽 국가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지난달 시진핑 국가주석이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윤 단장은 "일본도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룬다고 선언할 예정"이라며 "미국도 조 바이든 대통령 후보가 당선되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 국에서 특히 2050년을 목표로 탄소제로 선언이 잇따르는 건 국제연합(UN)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2018년 '1.5도 보고서'에서 "2030년까지 전 세계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적어도 45% 줄이고 2050년까지 넷제로 선언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UN은 각 나라에 올해 말까지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Long 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ie)'을 제출할 것을 권고했다. 파리협정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하로 제한하는 범지구적 목표를 위해 모든 당사국에게 올해 말까지 LEDS 수립을 요청한 상태다.

제조업 비중 높은 韓, 넷제로 선언 두고 고심

한국 역시 LEDS 제출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작년부터 정부와 전문가들이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을 운영하고 초안도 마련했다. 넷제로 선언은 빠졌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7년(7억910만t) 대비 2050년까지 40~75% 감축하는 다섯 가지 시나리오를 담았다. 이를 토대로 정부안을 확정해 올해 안에 UN에 이를 제출할 예정이다.

문제는 제조업 중심 한국의 산업 구조다. 현재 세워놓은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 7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지금으로선 올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인정했다. 2014년 정부는 올해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배출전망치 대비 30%(5억4300만t) 줄이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올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년(7억280만t)보다 22.7% 줄여야 한다.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잠정)은 전년 대비 3.4% 줄었다. 그나마 이것도 2018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 대비 2.5% 증가했던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수치다.

산업계의 반발도 만만찮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 등 온실가스 감축 이행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불가피해서다. 최근 산업연구원은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산업 전환의 기회로 활용해야' 보고서를 통해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미국이나 주요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제조업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다른 국가의 저탄소화 경로를 그대로 적용하는 건 우리 산업구조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 전략"이라고 했다.

'그린뉴딜'을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탄소제로 선언을 두고 찬반 양쪽의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올 여름 정부가 탄소제로 선언 없는 그린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하자 녹색당은 ‘이것은 역시 그린뉴딜이 아니다’라는 논평을 통해 "이번 정부 그린뉴딜에는 탄소배출 제로가 없다"며 "저탄소라는 애매한 용어만이 남았다"고 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도 "2050년 넷제로 목표와 로드맵이 빠진 이번 계획은 반쪽짜리 그린뉴딜에 불과하다"고 했다. 일부 시민단체는 반대 집회까지 벌였다.

이 같은 논란을 의식한 듯 조 장관은 당시 브리핑에서 "전 세계 120여개 국가가 넷제로를 선언했지만 실제 UN에 계획을 낸 것은 6개국에 불과하다"며 "선언과 구속력을 갖는 목표 제시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또 "국민적 합의를 통해 국가의 정식 정책목표로 제시하기 위해 이번 그린뉴딜에서는 발표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윤 단장은 "2050 탄소제로를 정부가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당에서 요청했고 그 방향을 조만간 당정청에서 결론 내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당에서 넷제로 선언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만큼 LEDS 정부안 발표와 UN 제출 시기는 연말보다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넷제로 선언이 담길 가능성도 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