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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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와 맞물려 공교롭게도 9개월 간 멈춰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이 재개된다. 앞서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이날 출석하라는 소환장을 보낸 바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상중(喪中)인 만큼 향후 재판 일정에 변수가 생길 가능성이 제기된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 (부장판사 정준영)는 뇌물 등의 혐의를 받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26일 속행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날을 피고인 출석 의무가 없는 공판준비기일로 잡으면서도 이 부회장에게 출석하라는 취지의 소환장을 보냈다. 공판준비기일은 본격적인 재판에 앞서 향후 공판이 집중·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검찰과 변호인이 쟁점사항을 정리하고 증거조사방법 등을 논의하는 절차다.

대개 준비기일엔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지만 형사소송법(제266조의 8 등)은 법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피고인을 소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법적 제재는 없다.

25일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의) 재판 출석 여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말했다. 재판 기일이 변경될 지도 지금으로선 확실하지 않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기일변경 여부는 어디까지나 재판부의 재량 및 결정사항”이라며 “아직 별다른 변동사항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상주인 점을 감안하면 이날 법정에 출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전례도 있다. 2010년 11월 서울중앙지법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변호인이 상을 당했다는 이유로 한 전 총리의 공판준비기일을 2주 가량 미룬 바 있다. 당시 검찰은 변호사가 상중이라는 이유로 재판을 연기하는데 불만을 나타냈지만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지난해 5월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씨는 남편의 상중에도 재판에 출석했다.

재개되는 재판에선 전문심리위원에 대한 공방이 이어질 예정이다.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실효적인 운영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재판부를 비롯해 특별검사, 이 부회장 측에 전문심리위원을 한 명씩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이후 재판부가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을 선임하자 특검은 해당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반발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연(개명 전 최순실)씨 등이 연루된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은 2017년 시작돼 약 3년7개월 간 계속되고 있다.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이 부회장의 부정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던 2심 재판부와 달리 작년 8월 대법원은 “삼성에 경영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으므로 박 전 대통령 측에 뇌물을 지원한 대가가 인정된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그러나 지난 2월 박영수 특검팀이 “재판장이 일관성을 잃은 채 편향적으로 재판한다”며 재판부 기피 신청을 내면서 마지막 재판이었던 1월 17일부터 현재까지 9개월째 중단된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달 기피 신청을 최종 기각해 결국 기존 재판부가 그대로 사건을 심리하게 됐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재판 외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등과 연관된 ‘경영권 승계’ 재판도 받고 있다. 이달 22일 시작된 이 재판도 최소 3~4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명실상부 삼성그룹의 총수로 올라선 이 부회장이 경영 보폭을 넓히는 데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