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회사가 경매로 사들인 아파트에 대해 다른 회사의 유치권이 행사되고 있고, 경매로 아파트를 취득한 회사 직원이 무단으로 해당 부동산을 훼손했다면 이는 권리행사방해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제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서울남부지법에 돌려보냈다고 16일 밝혔다.

A씨가 관리부장으로 일하고 있던 모 주유소는 2018년 10월 경기 부천의 한 아파트를 경매로 사들였다. 해당 아파트는 당초 B회사가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2015년부터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물건이었다. 유치권이란 채권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한 유치권자가 채권이 변제될 때까지 물건이나 부동산을 점유하고 인도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다.

A씨는 같은 해 11월 해당 아파트 출입문에 게시된 B회사 소유의 '유치권 행사 공고문'을 손으로 뗐다. 또 드릴을 사용해 B회사가 설치해 놓은 전자열쇠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어 새 전자열쇠를 설치했다.

1심은 A씨가 B사의 유치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보고 권리행사방해죄, 문서손괴죄, 건조물침입죄 등의 혐의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8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사건이 벌어진 아파트 호실의 출입문에는 B회사가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취지의 공고문이 2015년부터 게시돼 있었고 A씨도 그 사실을 알았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A씨는 드릴을 사용해 피해자 회사가 설치해 놓은 전자열쇠를 부수고 그 안으로 들어간 후 새로운 전자열쇠를 설치했으므로 B회사의 출입 및 유치권 행사를 방해한 게 맞다"고 봤다.

다만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1심 판결과 달리 권리행사방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아파트를 실제로 소유한 주체는 주유소이고 A씨가 해당 주유소의 '직원'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A씨가 주유소의 대표가 아니라 영업부장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주유소의 대표와 공모했다는 증거 없이 A씨가 직원 개인으로서 B회사에 대해 유치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다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은 "권리행사방해에 대해 A씨는 유죄"라며 "회사의 대표와 상의 없이 저지른 일이라도, 직무권한 범위 내에서 회사 자산에 가한 행위는 대표가 한 일과 똑같이 법률적 효력이 있다"고 간주했다.

재판부는 "A씨는 동생이 대표로 있는 주유소에서 관리부장으로 일하며 부동산 관리 등을 포함해 회사 업무를 총괄했다"며 "A씨의 행위는 주유소로부터 위임받은 직무권한 범위에 포함돼므로 주유소의 대표가 한 일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A씨에게 권리행사방해죄가 적용된다고 봤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