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대부고 총동창회(회장 이규용 나자인 회장)는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15회 졸업·왼쪽),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20회 졸업·오른쪽)을 제22회 ‘자랑스런 부고인’으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12월 1일 서울 역삼동 그랜드힐컨벤션에서 개최되는 정기총회 때 열린다.
“철은 신이 인류에게 베풀어준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이자 인간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유산이다.”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철강업체 포스코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금속공학자 권오준이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강조한 말이다. 서울대 공대 시절부터 철에 심취해 미국 철강산업의 본산인 피츠버그의 피츠버그대에서 금속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포스코 연구원으로 입사해 최고기술책임자(CTO), 대표이사 회장을 지낸 ‘아이언맨’이다. 그가 철에 관한 개인사와 문명사를 교직한 《철을 보니 세상이 보인다》를 펴냈다.저자는 학자로서 철의 본질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풀어놓는다. 137억 년 전 발생한 빅뱅 순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원소인 철이 뒷날 어떤 과정을 거쳐 우주에서 탄생했고, 어떻게 지구에서 가장 많은 금속이 됐으며, 인류문명사에서 어떤 가치와 역할을 했는지 설명한다.저자에 따르면 철은 지구 자체를 거대한 자석으로 만들어 우주로부터 지구로 날아드는 태양풍, 즉 방사선을 막아 인류 생존의 방파제 역할을 한다. 인체 내에서는 허파에서 흡수한 산소를 여러 기관으로 운반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든다. 산화물 형태로 존재하는 철광석에서 인류가 불순물을 분리하고 철을 뽑아내는 제철 기술을 발명한 후 비로소 문명이 발전했다. 철을 사용해 농업생산성을 높여 유목생활에서 정착생활로 전환했고, 잉여생산물이 발생함에 따라 신흥 권력세력을 만들었다. 철은 고대 그리스와 중국에서 철학을 등장시켰고, 자본주의 탄생에 기여했으며 그 대안체제로 사회주의를 태동시키기도 했다.저자는 전쟁의 성패를 결정짓는 병기로서 철의 가치와 역사도 탐색한다. 로마제국과 대영제국의 번영,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미국 철제 무기의 활약상은 흥미롭다.포스코 CEO 출신으로 철강산업에 기울였던 노력과 성과도 빼놓지 않는다. 리튬 등 신성장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한 3대 회장(정준양-권오준-최정우)으로 이어져온 사명감과 역할을 반추한다. 차세대 제철 공정인 파이낵스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비화를 소개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생산공장인 스마트팩토리를 구축한 배경도 들려준다. (페로타임즈, 528쪽, 3만8000원)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다산금융상은 금융 발전에 기여한 금융인과 회사를 표창하기 위해 제정한 상이다. 우리 금융산업은 핀테크(금융기술)를 중심으로 크나큰 변혁을 겪고 있다.각 금융회사는 국내 시장의 포화와 경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화 전략을 확충하고 있다. 이번 다산 금융상은 이런 환경 변화를 극복하고 우수한 성과를 나타낸 금융인(대상)과 회사(금상)를 선발했다.다산금융상 대상의 영예는 3년 임기를 거쳐 재선임된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에게 돌아갔다. 그는 금융그룹 순위를 결정하는 총자산, 당기순이익, 시가총액 등 3대 지표에서 모두 1등을 차지하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보험부문은 삼성생명이 받는다. 장기적으로 보험산업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상품, 고객, 원가 등 전 부문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혁신활동을 지속해왔다.증권부문에서는 KB증권이 수상한다. 이 회사는 자산관리영업에서 타사와 차별화된 전략으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해외주식을 환전 없이 원화로 거래하는 서비스를 개발해 고객 편의성을 높였다. 자산운용부문에서는 글로벌 역량에서 업계 최고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수상한다. 이 회사는 36개국에서 직접운용 해외펀드를 판매하고 있다. 대체투자에서도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여신금융부문에서는 비씨카드가 수상한다. 금융권 최초로 원천기술을 수출했고 해외에서도 국제카드 수수료 없이 카드 결제를 할 수 있게 하는 등 소비자 편의성을 높였다.생활금융부문은 신용협동조합이 받는다. 금융취약계층의 자조적 비영리 금융기관으로서 아시아 1위이며 117개국 중 자산 규모 4위의 민간 주도형 협동조합으로 성장했다. 17년 연속 흑자로 건전성도 향상됐다.
“대학의 미래는 이곳에 있다.” 영국 웨스트미들랜즈 지방의 작은 도시 코번트리에 있는 워릭대 제조업그룹(Warwick Manufacturing Group, 이하 WMG)에 쏟아지는 찬사다. 우리나라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WMG는 유럽 최고의 융복합학과 중 하나다. 자연과학과 공학, 경영학과를 한데 묶은 WMG의 성공 비결은 파격적 혁신이었다.WMG는 대학과 기업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을 허물었다. 교육을 기업에 개방했다. WMG는 계획부터 평가에 이르는 전 교육 과정에 기업의 요구를 반영했다. 산업체 전문 인력을 교수진으로 대거 영입했다. 현장 및 실무 교육으로 학생을 실전형 인재로 키웠다. 타성에 젖은 기업 종사자들을 최신 기술과 경영 전략으로 재무장시켰다. 독특한 프로그램은 인기몰이를 했다. 기업인 대상 단기 강좌로 출발한 WMG는 학부와 대학원 그리고 중등교육을 아우르게 됐다. 싱가포르, 인도, 중국 등 7개국에 분교를 설립했다. 교육 개혁 정책을 영국 정부에 조언했다.연구 활동의 주안점을 ‘시장성’에 뒀다. WMG는 ‘연구를 위한 연구’를 지양하고 상업성 창출에 전력했다. 산학협동 프로젝트 참여 업체들의 지식재산권을 인정했다. 영업비밀 유출을 막았다. 연구개발이 끝난 뒤에도 시장 반응을 체크하며 개선 사항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BAE, 롤스로이스, 제네카 등 영국 간판기업의 부활을 도왔다. 재규어랜드로버, IBM, 다이슨 등 글로벌 기업과도 파트너십을 맺었다.“신성한 학문의 전당을 더럽힌다”는 비난과 맞서 싸우며 추진한 실험은 큰 성과를 낳았다. 워릭대의 도약을 이끌었다. WMG가 교육과 연구개발 사업으로 거액의 자체 수익을 거두며 10개 연구센터와 140여 개 하이테크 업체가 입주한 사이언스파크를 운영하게 되자 다른 학과들도 WMG를 벤치마킹했다. 그 덕분에 재정난과 학내 분규로 존망이 위태로웠던 워릭대는 환골탈태했다. 1965년 개교한 대학은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등 전통의 명문들과 함께 ‘영국의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러셀그룹의 멤버가 됐다.제조업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몰락의 길을 걷던 웨스트미들랜즈 기업들은 WMG와의 협업으로 ‘제조업 3.0’ 시대를 선도하게 됐다. 제조업체들은 우수한 인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으며 정보통신기술(ICT) 접목, 고부가가치화, 서비스업화 등 최신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세계 4대 회계법인 언스트&영은 잉글랜드 중서부 지역 제조업체들을 “영국 수출의 원동력”이라고 격찬했다.WMG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의 대학 교육은 존폐의 기로에 서있다. 등록금에 의존하는 재정 구조와 등록금 규제 정책이 맞물려 많은 대학은 재정 위기에 처해 있다. 학령인구 감소도 걱정거리다. 교육의 질은 제자리걸음이다. 각종 국제 대학 평가 결과가 보여주듯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 동량을 육성하겠다”는 다짐은 구호에 그친다. 학내외 이해집단의 반발과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창조적 파괴가 절실한 순간이다.제조업이 무너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9월 제조업생산지수는 전년 대비 1.5% 감소했다. 2009년 이후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산처럼 쌓인 재고가 줄지 않는 가운데 국제경쟁력을 가늠하는 제조업경쟁력(CIP)지수는 뒷걸음질 중이다. 공장 가동률은 70%대 초반에 머물러 있고 투자심리는 외환위기 이래 최악이다. ‘한강의 기적’의 주역이었던 제조업이 경제난의 발원지가 될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정부의 반(反)제조업 정책 재검토와 함께 내실 있는 산학협동을 통한 개방적 혁신이 요구된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국판 WMG’의 등장을 기대한다. 대학과 기업 간 소통과 공생을 막는 불신의 벽을 허무는 교육 혁명이 일어나기를, 이를 통해 고등교육과 제조업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