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 의사 확인절차 누락…1년 6개월간 진행한 재판 '없던 일로'
항소심 재판부 "법원의 잘못으로 다시 재판하게 돼…유가족께 송구"


'청담동 주식부자'로 알려진 이희진(34)씨의 부모를 살해하고 금품을 강탈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다운(35)씨의 재판이 1심에서의 국민참여재판(국참) 확인 절차 누락으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열리게 됐다.

이로써 지난해 4월 기소돼 1심부터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장장 1년 6개월간 진행된 김씨에 대한 재판은 모두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법원 잘못으로 '이희진 부모살해' 김다운 재판 1심부터 다시
수원고법 형사1부(노경필 부장판사)는 6일 강도살인, 사체유기, 강도음모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지법 안양지원으로 돌려보낸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은 1심에서 병합 사건과 관련해 국민참여재판 희망 의사를 묻는 절차를 위반한 잘못이 있다"며 "항소심은 이런 문제를 해소할 방법을 다각적으로 검토했으나, 피고인이 국참을 희망한다는 뜻이 명확해서 대법원의 입장대로 사건을 1심으로 돌려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의 잘못으로 다시 재판하게 된 점에 대해 이 자리에 계신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1심 재판부인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지난해 4월 강도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같은 해 9월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이 김씨가 이씨의 동생을 납치해 금품을 빼앗으려는 계획을 세운 혐의(강도음모)로 추가 기소하면서 이들 두 사건을 병합, 재판을 속행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법원은 피고인에게 각각의 사건에 대해 국참을 원하는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나, 1심 재판부는 추가 기소된 '강도음모' 혐의 사건 병합 과정에서 김씨에게 국참 희망 의사를 묻지 않는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1심은 국참 확인 절차를 누락한 채 그대로 재판을 진행해 지난 3월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곧바로 항소해 2심 재판을 받던 김씨는 지난달 10일 결심공판에서 낸 의견서를 통해 국참 희망 의사를 밝혔고, 항소심 재판부는 1심에서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발생한 사실을 파악하고 이번에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결국 1년 6개월에 걸쳐 진행된 '김다운 사건' 재판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다만 김씨가 원하는 대로 국참이 열릴지는 미지수이다.

담당 재판부인 수원지법 안양지원 합의부가 이번 재판을 국참으로 진행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하면, 배제 결정을 내려 통상의 형사재판을 열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앞서 했던 1심의 재판을 처음부터 똑같이 반복하는 셈이 된다.

항소 후의 절차도 마찬가지다.

만약 배제 결정을 하지 않으면, 본원인 수원지법 합의부로 사건이 이송된다.

수원지법 합의부는 국참이 열어 배심원의 참여하에 사건을 심리하게 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이 1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국참이 열릴지는 담당 재판부가 필요한 절차를 거친 후 결정하게 된다"고 설명하면서 재판을 마쳤다.

김씨는 지난해 2월 25일 오후 4시 6분께 안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이씨의 아버지(62)와 어머니(58)를 살해하고 현금 5억원과 고급 외제 승용차를 빼앗아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고용한 박모 씨 등 중국 교포(일명 조선족) 3명과 함께 범행을 저지른 뒤 이씨의 아버지 시신을 냉장고에 넣어 평택의 한 창고로 옮긴 혐의도 받는다.

또 이씨의 동생을 납치해 금품을 빼앗으려 한 혐의로도 추가 기소돼 지난 3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씨 측과 검찰의 쌍방 항소로 진행된 2심은 이달 들어 선고 공판만을 남기고 있었으나, 항소심 재판부가 1심 과정에서 국참 확인 절차 누락 사실을 파악하고 이번에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