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하다 돈 잃자 도박신고→경찰 증거 못찾고 철수하자 "흉기 갖고 있다" 재신고
경찰 '구속사유 없다' 석방하자 1시간 뒤 흉기 들고 집 찾아가 살해 혐의
피의자 혐의 부인, 경찰 "정황 명백해"…'성급한 석방' 지적에 경찰청장 "사실관계 확인"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함께 화투를 친 70대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가 22일 경찰에 구속됐다.

분당서 여성 2명 살해한 피의자 구속…법원 "도주 우려"
경기 분당경찰서는 이날 오후 A(69)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A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수원지법 성남지원 최욱진 부장판사는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이날 오전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기 위해 성남시 분당경찰서 유치장을 나서면서 혐의 인정 여부, 범행 동기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피해자들과 평소 많이 다퉜느냐는 물음에는 "술도 사주고 담배도 사주고 고쳐주기도 하고 그랬다"라며 관계가 나쁘지 않았다는 취지의 답을 한 뒤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A씨는 지난 20일 새벽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의 한 아파트 B(76·여) 씨 집에서 B씨와 지인인 C(73·여)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전날 저녁 이웃 주민 2∼3명과 함께 B씨 집에서 점당 100원짜리 화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던 중 A씨는 B씨 등과 시비가 붙었고 오후 8시 57분부터 3차례에 걸쳐 경찰에 도박 신고를 했다.

그는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화투나 현금 등 도박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해 B씨 등을 입건하지 않고 철수하자 "내가 칼을 들고 있으니 나를 체포해가라"고 재차 신고했다.

이에 경찰은 B씨 집으로 다시 출동해 곁에 흉기를 두고 앉아있던 A씨를 오후 9시 25분께 특수협박 혐의로 체포해 분당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했지만, A씨가 혐의를 인정하고 주거가 일정하며 도주 우려가 적어 구속 사유가 없다고 판단, 같은 날 오후 11시 20분께 석방했다.

분당서 여성 2명 살해한 피의자 구속…법원 "도주 우려"
A씨는 풀려난 뒤 자정이 조금 안 된 시각 집에 도착해 10여분 만에 소주병과 흉기를 들고나와 B씨 집으로 향했고 다음 날인 20일 오전 7시 50분께 B씨는 C씨와 함께 집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CC(폐쇄회로)TV 영상 등 주변 증거를 통해 A씨가 화투를 하다가 돈을 잃고 B씨 등과 다퉈서 범행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A씨는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계속 부인해 자세한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며 "그가 범행을 저지른 정황이 명백해 혐의를 입증하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사건은 A씨가 경찰에서 풀려난 지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난 데다 2명이 목숨을 잃은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만큼 경찰의 석방 조처가 성급했다는 지적이 경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살인사건 발생 전 경찰이 A씨에게 한 조처가 적절했는지 여부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