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소속 근로자가 원청업체를 점거하고 파업을 벌여도 원청업체는 업무방해 등으로 법적 책임을 묻지 못하고 퇴거도 요청할 수 없게 됐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지난 3일 직접 근로계약을 맺고 있는 기업(하청업체)이 아니라 그 기업의 원청업체를 점거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근로자들을 무죄로 판단한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도급인(원청업체)은 수급인(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와 직접적인 근로계약 관계를 맺고 있지 않지만 일정한 이익을 누리고 사업장을 근로 장소로 제공했다”며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쟁의 행위로 인해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회통념상 용인해야 한다”고 했다.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수자원공사(원청업체)에 청소·시설관리 용역을 제공하기로 계약한 서현 및 포시즌환경 소속 근로자들은 회사와 단체교섭에 들어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소속인 이들은 회사와 교섭이 결렬되자 2012년 6월 25일 파업에 들어가고 원청업체인 수자원공사를 점거했다.

노조원들은 확성기를 동원해 시위를 벌이고 수자원공사 본관 건물에 쓰레기를 투척해 업무방해, 퇴거불응 등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형을 선고했지만 2심(대전지법 형사합의부)에서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무죄를 선고했다.

노조원들의 사업장 점거 파업은 외국에서는 불법이지만 한국에선 중요 생산 시설만 아니면 허용돼 왔다. 이번 판결로 국내 기업은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의 사업장 점거 파업까지 용인해줘야 한다.

노동법 전문가들과 경영계는 “앞으로 법률상 제3자인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파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이유로 실직자와 해고자 노조 가입도 허용하면서 사업장 점거 파업을 금지해 달라는 경영계 요구는 외면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와 사내하청 노조의 원청 사업장 점거 파업이 크게 늘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종석 전문위원/남정민 기자 jsc@hankyung.com